대빈창을 아시는가

까마귀와 고양이

대빈창 2020. 6. 1. 07:00

 

열흘 전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봉구산자락 옛길 오르막에 오르자 부푼 바다가 보였습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의 대기는 희부염했습니다. 바다건너 석모도가 흐릿했습니다. 뒷집은 봉구산 등산로 초입 밭을 내놓았습니다. 대처 사는 외아들의 아파트 입주로 목돈이 필요했습니다. 서울 사람이 땅을 샀습니다. 뒷집 부부는 농사를 계속 지었습니다. 비닐피복을 씌운 두둑에 옥수수가 심겼습니다. 맨 땅은 참깨 모를 낼 예정입니다. 그때 밭 가운데 서로 노려보는 짐승이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분명 검돌이였습니다. 구박덩어리 검돌이도 새끼를 뱄습니다. 노순이와 새끼들을 끔찍이 아끼는 뒷집 형수지만 검돌이는 눈 밖에 났습니다. 형수가 거름으로 던진 수박껍질에 녀석은 불쌍하게 코를 박고 있었습니다. 까마귀도 허기가 졌는지 땅 바닥에 버려진 음식을 쫓다 고양이와 마주쳤습니다.

대빈창가는 길 언덕의 교회 입구 앞집 〇 〇 형이 닥터헬기를 타고 섬을 떠난 진 육 개월이 되었습니다. 형은 뇌졸증으로 쓰러졌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썼던 형은 다행히 재활원으로 옮겼습니다. 주인 없는 닭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닭장을 빠져나와 앞산을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닭들이 풀숲에 낳은 계란은 까마귀 차지가 되었습니다. 까마귀는 닭이 알을 낳기를 기다렸습니다. 온기가 가시지 않은 달걀을 부리에 문 까마귀가 봉구산정을 향해 날개를 펼쳤습니다. 한 녀석이 그 뒤를 따라 날아갔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광경입니다.

노순이는 다섯배 째 새끼를 여섯 마리 낳았습니다. 아비를 닮은 검정 새끼 두 마리가 죽었습니다. 어쩌다 어미를 닮은 노란색 네 마리를 거두었습니다. 어머니가 노순이의 젓꼭지를 만지며 말씀하셨습니다.

“젖꼭지 네 개만 불었구나.”

경쟁에서 살아남은 네 마리는 하루가 다르게 컸습니다. 날이 더워지자 형수는 골판지 상자로 만든 해산실의 새끼들을 광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눈을 뜬 새끼들이 옹송거리며 어미의 젓을 빨았습니다. 새끼가 크자 노순이의 우리집 외출이 잦아졌습니다. 부엌 샛문에 와서 조르는 노순이에게 어머니는 마른 망둥어를 던져주었습니다. 젓가락이 가지 않아 돌덩이처럼 굳은 마른 망둥어를 노순이는 용케 씹어 삼켰습니다.

“지네 집에서 줬는데 지가 다 먹네”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산책에서 돌아오며 뒷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노순이가 새끼들 건드리지 말라고 야 ~ ~ 옹! 야 ~ ~ 옹! 야 ~ ~ 옹! 하면 쭈그리고 앉은 나의 종아리를 머리로 부볐습니다. 녀석은 강자에게 아양을 떨었습니다. 그중 새끼 한 마리가 야 ~ ~ 옹! 하며 어미 흉내를 따라 했습니다. 뒤에 섰던 형수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수놈인가 봐요.”

새끼를 밴 검돌이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음식물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던 까마귀와 검돌이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습니다. 녀석들은 서로를 노려보았습니다. 모성애의 힘인지 모르겠습니다. 눈싸움에 밀린 까마귀가 허공으로 날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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