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가 보이지 않은지 열흘이 되었습니다. 아침저녁 산책이 허전하기 그지없습니다. 가끔 텃밭에 나와 농사일을 하는 주인부부에게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말이 씨가 될지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요. 주문도 느리 선창에서 대빈창 해변 가는 길은 들녘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농로입니다. 들녘이 끝나는 지점에 사거리가 나타납니다. 왼쪽 길은 봉구산자락으로 향하는 옛길입니다. 오른쪽 길은 자연부락 대빈창 마을입니다. 왼쪽 길로 접어들면 나즈막한 구릉에 기댄 외딴 집이 나타납니다. 몇 년 전만해도 옛길을 따라 몇 필지의 밭이 이어졌던 곳입니다. 초로의 부부가 새 집을 짖고 이사를 왔습니다. 주인네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대박이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대박이는 덩치가 아주 큰 녀석이었습니다. 바깥양반께 족보를 물어보니, 껄껄 웃으며 흔한 잡종견이라고 합니다. 놈은 순진하거나 음흉합니다. 처음 녀석을 만났을 때 짖는 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는지 메아리가 돌아올 정도였습니다. 낯을 익혔는지 녀석은 아침저녁 산책길에 나를 보고 본체만체 딴 짓을 했습니다. 대박이는 겉으로 순해 보이나 속은 엉큼한 내숭쟁이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녀석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나를 보면 딴짓에 열중이지만 낯선 이가 눈에 뜨이면 섬이 울릴 정도로 컹컹 짖어댔습니다.
‘대박이’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그래도 녀석은 충성심 하나 만큼은 대단합니다. 대박이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다, 주인네가 마당가나 텃밭에 그림자라도 보이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납게 짖어댑니다. 낯선 이에 대한 철저한 경계를,주인네에게 자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먹을 것을 챙겨주는 주인에 대한 견(犬)의 본능이겠지요. 산책 가는 길에 주인이 마당을 쓸자, 사납게 이빨을 드러냈던 녀석이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하게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대박아~~ 대박아 ~~
서너 번을 불러도 대박이는 코를 땅에 박고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녀석의 눈길은 나의 발길을 부지런히 쫒고 있었습니다. 종이컵이 바람에 떼구르르 굴러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