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자년(庚子年)의 대서(大暑)는 7월 22일이었습니다. 대서(大暑)는 24절기 중 열두 번째로 소서(小署)와 입추(立秋) 사이에 들며, 중복(中伏) 때로 더위가 심한 시기입니다. 대서라고 아침 산책을 미룰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헌 운동화를 발에 꿰었습니다. 대기의 푸른 기운이 점차 가시고 먼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발이 마음보다 앞서 몸을 이끌었습니다. 장마전선이 북상하여 많은 비를 쏟아붓고 어제밤부터 잠시 주춤했습니다. 허공을 한 움큼 움켜쥐면 물이 방울방울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반환점 바위벼랑에서 내처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랐습니다. 물먹은 대기처럼 축축 처지는 몸을 끌다시피하며 나무테크 계단 정상에 간신히 올랐습니다. 지친 몸을 얹힐 요량으로 방부목 기둥에 팔을 뻗는데 가지 하나가 삐죽 솟아 있었습니다. 대패로 민 것처럼 반듯한 방부목에 가지가 남았을 리 없습니다. 분명 나뭇가지로 위장한 벌레가 틀림없었습니다. 산책에서 돌아와 백과사전을 검색합니다.
대벌레는 대벌레과의 곤충으로 한자어로 죽절충(竹節蟲)이라고 합니다. 학명은 Ramulus irregulariterdentatus Brunner von Wattenwyl 입니다. 몸길이는 7~10cm로 날개가 없습니다. 몸이 매우 길쭉하며 가늘고 긴 6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에 붙어 있으면 나뭇가지로 착각을 일으키는 위장술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대벌레의 알은 식물의 씨앗과 비슷하게 나뭇잎 위나 땅 위에 낳아 놓습니다. 겨울을 나고 여름이 돌아오면 깨어납니다.
대벌레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한 곤충으로 전국에 서식합니다. ‘의태(擬態)’의 대명사로 주변의 식물과 닮은 모습으로 몸을 숨겨 유명해 졌습니다. 대벌레는 악취를 내뿜기도 하고, 도마뱀 꼬리처럼 도래마디와 넓적다리마디 사이를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땅에 떨어져 사체 강직 마냥 죽은 척을 곧잘 합니다. 특히 낮에는 움직이지 않고 밤에 활동합니다. 어떤 종은 몇 시간에 한 번씩 몸의 색깔을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녀석은 옴짝달싹 못하고, 숨도 멈춘 채 온 몸이 얼마나 근지러웠을까요. 나는 나무기둥을 짚으려 내민 손을 다시 거두어 들였습니다. 부동자세로 흔들리지 않고 나의 눈치를 보는 녀석이 안쓰러웠습니다. 머리 위 두 개의 더듬이가 눈처럼 보였습니다. 녀석은 지금 눈을 감고 있을까요? 아니면 눈을 뜬 채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을까요? 몇 분이 흘러갔지만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녀석에게 잘 있으라는 손을 흔들며 나무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저녁산책,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옆 아름드리 참나무 줄기로 옮겨가 마음 놓고 낮잠을 즐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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