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는 소목 사슴과에 속하고, 노루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체가 작습니다. 암수 모두 뿔이 없으나 수컷은 송곳니가 튀어나와 구분된다고 합니다. 녀석들은 뜀뛰기 선수로 사람 그림자만 보여도 쏜살같이 내달려 실제 수컷인지 암컷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고라니의 검은 눈망울은 금방 눈물을 쏟아 낼 것처럼 슬프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녀석들의 담갈색 털은 억세기 그지없습니다. 고라니는 초식동물로 연한 나뭇잎과 새순을 탐합니다. 푸른잎이 귀한 겨울철은 풀·나무뿌리와 여린 나뭇가지로 연명합니다. 어느 해 눈이 많았던 겨울, 녀석들은 울타리로 둘러진 사철나무 잎을 뜯어 먹었습니다. 신경통·관절염에 고라니 뼈가 직통이라는 민간요법에 전해오는 속설로 녀석들은 줄곧 수난을 당했습니다.
뜬금없이 물 빠진 갯벌 한 가운데 고라니 한 마리가 길을 잃고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솔숲에서 풀을 뜯다 인기척에 놀라 도망친다는 것이 하필이면 갯벌로 뛰어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끼는 순간 녀석은 달음박질을 시작했습니다. 나의 산책 코스와 같은 방향인 바위벼랑을 향해 갯벌을 내달렸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던 고라니가 순간 멈추었습니다. 녀석은 방향감각을 상실했는 지 내 쪽을 멀건이 바라보았습니다. 넓게 펼쳐 진 갯벌의 고라니 뒤편 무인도는 분지도 입니다. 고라니는 사람에게서 멀리 도망치다, 한순간 멀거니 정신을 놓고 뒤를 바라봅니다.
백사장이 끝나는 바위벼랑에 잇대어 주민들이 경운기와 트랙터로 갯벌을 드나드는 시멘트 진입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녀석은 길을 찾았다는 듯이 유유히 경사진 진입로를 올라 산 날맹이가 날카로운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녀석을 나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요? 물때는 두꺽기였습니다. 다행히 갯벌에 조개를 잡는 주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산책은 해가 봉구산을 넘어오기 전에 운동화 끈을 조였습니다. 봉구산자락 옛길을 구불구불 따라가다 대빈창 해변 해송 숲을 지나면 바다가 가로막아섭니다. 좌우로 0.5㎞의 제방길이 바다와 해송숲을 경계 지었습니다. 폭 좁은 백사장 너머 갯벌이 아득하게 펼쳐졌고, 바다는 저 멀리 물러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