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찔레꽃 피는 계절

대빈창 2020. 5. 25. 07:00

 

황해(黃海)의 작은 외딴섬 주문도의 찔레꽃 피는 계절은 소만(小滿)과 망종(芒種) 사이입니다. 24 절기 중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절기입니다. 소만은 만물이 자라서 세상을 가득 채운다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망종은 논보리나 벼 등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파종하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주문도 대빈창가는 길 다랑구지의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년중 농부들에게 가장 바쁜 농번기입니다. 밭에 고추와 고구마 심기를 마친 섬주민들이 모내기에 힘을 쏟았습니다. 봉구산자락에서 내려다보는 다랑구지가 하루가 다르게 푸르게 변해갔습니다.

어르신네들은 뻐꾸기가 울고 찔레꽃이 피면 비가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조들의 오랜 경험은 기상청보다 날씨예보가 정확합니다. 주문도에 삶터를 꾸리고, 요즘시기 물 부족을 겪지 않은 해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4 - 5년 전 극심한 봄 가뭄으로 모를 내지 못해 빈 논으로 해를 묵힌 몇 농가가 있었습니다. 주문도저수지의 담수량은 진말 들녘을 한번 적실 량입니다. 대빈창 다랑구지는 지하수를 퍼 올려 벼농사를 짓지만 관정은 헛바람만 뿜어냈습니다.

올봄의 기상이변이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유달리 봄비가 잦아 모내기를 준비하는 무논마다 물이 흥건합니다. 논을 쓸리는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마다 땅속에서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미꾸라지를 찾아 저어새, 해오라기, 백로가 날아들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아침 산책에서 욕심쟁이 할아버지 묵정밭 울타리의 찔레꽃을 부감법으로 잡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더 받을 요량으로 땅을 내 놓으며 밭에 난 잡풀을 트랙터로 갈아 엎었습니다. 작물을 심었다는 시늉을 내비친 눈가리고 야옹하는 격입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져 /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어머니의 18번지 「찔레꽃」의 1절 가사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 군국주의 총칼아래 신음하던 1941년에 발표된 신인 여가수 백난아의 노래입니다. 글을 모르시는 어머니가 아시는 단 한 곡의 노래였습니다. 18번지라고 했지만 나는 마이크를 손에 쥔 어머니의 모습을 딱 한 번 보았습니다. 김포 한들고개 옛집은 마을회관 옆집 이었습니다. 그날 무슨 일인지 온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려 잔치를 벌였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끌려 억지로 단상에 오르신 어머니는 1절을 채 다 못 부르시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뒷자리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나 지금이나 수줍음이 많으십니다. 40여 년 전 저쪽 세월 젊은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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