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새 근원수필近園隨筆
지은이 : 김용준
펴낸곳 : 열화당
동양화가·미술사학자·미술평론가·교육자·수필가·장정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埈, 1904 - 1967)은 이 땅의 근현대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인적(全人的) 예술가였다. 경북 선산(善山) 출신으로 도쿄미술학교을 졸업했다. 서울대·동국대 미술학부 교수를 지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월북했다. 평양미술대학 교수,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새 근원수필』, 『조선미술대요』, 『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민족미술론』.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35년 만에 열화당에서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들’ 시리즈로 『근원 김용준 전집』을 펴냈다. 『새 근원수필(近園隨筆)』은 전집의 1권으로 1·2부로 나뉘어 실린 53편의 글은 1936 - 1950년 사이에 발표된 글들을 모았다. 선생은 수필을 이렇게 정의했다. “다방면의 책을 읽고 쓴맛, 단맛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글”이라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1905 - 1944)의 글모음집 『구수한 큰맛』과 영원한 국립박물관장 혜곡 최순우의 5권의 전집, 김원룡의 『한국미의 탐구』까지, 그리고 우리 문화예술에 관한 〈학고재 신서〉 시리즈가 책장 두서너 칸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아둔하게도 나는 우리나라 초창기 미술사학의 큰 별 근원(近園)의 책을 이제 접했다. 늦었지만 전집을 한 권씩 손에 잡아야겠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월북 문인들의 해금은 1988년도에 있었다. 정지용, 이태준, 이기영, 임화, 박팔양······. 해방정국 문단의 고갱이였던 그들은 월북 작가로 낙인찍혀 오랜 세월 강제로 잊혀진 문인들이었다. 미술비평가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해금 당시, 분명 ‘근원 김용준’은 ‘김○준’으로 활자화되었을 것이다.
「검려지기(黔驢之技)」는 아호 ‘근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생 남의 흉내나 내다가 죽어 버릴 인간이라는 의미로 근원(近猿)이라고 했다. 청말(淸末)의 김근원(金近園)이란 사람의 호를 보고 근(近)자를 마음에 담았었다. 아랫자를 다른 원(猿)자로 했다가 다시 원(園)으로 다시 돌렸다. 「두꺼비 연적(硯滴)을 산 이야기」는 사기(沙器)에 황갈색 검누른 유약을 씌운 사오십년 묵은 연적에 대한 이야기였다. 없는 돈에 아내에게 바가지까지 긁히며 손에 넣은 못생긴 두꺼비 연적에 미술사학자는 자다가도 일어나 눈을 맞추고서 다시 잠을 붙였다. 못나고 어리석고 멍청하게 생긴 두꺼비 연적에 대한 수필가의 못말리는 애정에 슬며시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중학교시절 학교박물관 개관 일정에 맞추어 유물을 모으던 국사선생의 꼬임에 빠져 귀한(?) 연적을 일원 한 푼 없이 기증하고 말았다. 근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모교 박물관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 연적이 눈에 뜨이면 울화통(?)이 터져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연적은 어른 손아귀에 착 달라붙은 아담한 크기였다. 포도송이와 잎사귀 문양을 부조로 새긴 청화백자였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이는 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포도청화백자연적'은 보물급의 값어치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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