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김영사
고전 인문학자 정민의 산문집 세트를 강화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1권 『체수유병집滯穗遺秉集』은 추수가 끝난 들녘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처럼 수십 권의 책을 펴내면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 50편을 엮었다. 2권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는 30여 년 학문의 길을 이끌어 준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 50편을 담았다. 나는 2권부터 손에 들었다. 1부는 사람에 관한, 2부는 책과 문장에 관한 글이었다.
1부 「표정 있는 사람」의 1장 ‘그늘의 풍경’은 진정한 독서가 청장관 이덕무, 벼루장인 석치(石癡) 정철조, 실학자 박제가, 백범 김구 등. 『유몽영幽夢影』은 청초의 장조 張潮(1650 - 1707), 『유몽속영幽夢續影』은 청말의 주석수 朱錫綬(? - ?)가 지은 219개와 86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청언소품집淸言小品集이다. 스치고 지나가는 상념들을 짤막한 잠언 형식으로 기록했다. 내가 잡은 이 부류의 책은 소설가 이원우가 엮은 허균의 『숨어 사는 즐거움』이 유일했다. 2장 ‘인생의 여운’은 손때에 전 옥편과 한적漢籍을 유품으로 물려 준 스승 이기석 선생. 초등학교 졸업장으로 오직 한학으로 모든 관문을 통과해 대학교수까지 오른 스승 김도련. 표구장 이효우, 시인 박목월과 이승훈, 수필가 피천득과 윤오영, 전각 篆刻 고암 정병례, 금지화金紙畵 구자현, 필장筆匠 정해창 선생 등.
2부 「향기나는 책」의 1장 ‘책의 행간과 이면’은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의 동시집 『이상한 아빠』, ‘재일유학생간첩단사건’의 무기징역수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시인 강제윤의 『보길도에서 온 편지』, 열 개의 벼루를 밑창 내고, 천 개의 붓을 모지라졌다는 『완당 평전』, 흑산도 16년 유배가 낳은 정약전의 어류도감을 새롭게 번역한 『현산어보를 찾아서』 등. 2장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율곡 이이의 일기 『석담일기』에서 연암 박지원의『열하일기』까지 고전 12권을 소개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30년 독서여정의 정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열하일기를 내 손에 펼쳐들다니. 스스로 대견했다.” 한문학자 김혈조 교수가 번역한 《돌베개》에서 펴낸 3권짜리 『열하일기』를 책씻이하고 긁적인 나의 책 리뷰 마지막 구절이었다. 부록으로 실린 수상소감문 3편은 한문과 고전을 연구하는 공부 과정과 수상작을 집필하게 된 뒷이야기를 실었다.
고전 인문학자는 말했다. “사람의 만남은 평생의 연속이며, 책 속의 짧은 일별一瞥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고. 마지막은 그 유명한 ‘새벽 눈보라를 뚫고 먼 길을 떠나는 선각자’를 읊은 한시漢詩의 뒷 이야기다.
穿雪野中去 눈길 뚫고 들판 갈 제
不須胡亂行 어지러이 가지 말라.
今朝我行跡 오늘 아침 내 발자취
遂作後人程 뒷사람의 길 되리니.
그동안 우리는 서산대사(1520 - 1604)의 선시禪詩로 잘못 알고 있었다. 저자의 공부에 의하면 서울대 규장각의 필사본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조선 후기의 뛰어난 시인 이양연李亮淵(1771 - 1853)의 「야설野雪」이란 제목의 위 詩가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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