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지은이 : 전우익
펴낸곳 : 현암사
책의 초판은 1993년에 출간되었다. 내가 잡은 책은 25년 만에 재출간된 기념판이었다. 서둘러 2002년에 출간된 선생의 에세이 『사람이 뭔데』와 『호박이 어디 넝쿨째 굴러옵디까』를 물색했다. 앞 책은 새로 판쇄를 찍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뒤 책은 품절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책은 초판이 나온 지 10년이 지나 2002년 MBC '!느낌표‘에 소개되면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일반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잘 사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 준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무명씨라는 뜻의 우리말 ‘언눔’을 아호로 삼은 농부 작가·재야 사상가 전우익(1925 - 2004)은 경북 봉화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방 정국의 민청에서 청년 운동을 하다 6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사회안전법으로 65세까지 보호관찰자로 주거제한을 받았다. 출옥 후 고향 봉화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 책은 시인 신경림의 발문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사람」과 수년 간 스님과 보살께 보내는 11통의 편지와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2통을 엮었다.
선생의 글은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여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철학을 보여주었다. 글은 현학적이지 않았다. 소탈한 문체로 소박한 삶의 지혜를 일깨웠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경독(耕讀)의 일체화’로 참된 경(耕)은 독(讀)을 필요로 하며, 독(讀)도 경(耕)을 통해서 심화되고 제 구실도 할 수 있다”(73쪽)고 말했다. 농부 철학자는 양계장의 닭을 보며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넘어 눈에 띄는 온갖 짐승들을 괴롭히니 ‘만물지중萬物之衆 유인최악唯人最惡’으로 고쳐야하고, 의료보험료를 강제징수하고 압류를 명령하는 국가를 가리키며 ‘천부인권天賦人權 국부인권 國賦人權’이라고 비꼬았다. 대파는 한여름 땡볕 드는 마당에 사나흘 널어 곯게 한 다음에 뿌리를 자르고 심어야 크게 자랐다. 선생은 대파를 보며 사람에게 왜 아픔이 필요한 지, 어떻게 아파야 하는 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하는 지를 일깨워 주었다.
표지그림은 늪가의 부들과 연이었다. 소세지같이 생긴 꽃 이삭을 단 식물이 부들이다. 선생은 부들자리를 매면서 일치보다는 차이를 너무 내세우는 진보 진영의 행태를 나무랐다. 물을 쏟아 부어도 거부하는 연잎에서 자기를 지키면 어떠한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성찰을 깨달았다. 농부 작가는 물을 푸지 않으면 샘이 말라버리듯 편지를 쓰지 않으면 생각까지 말라버릴까 두려워 글을 쓴다고 했다. 선생은 스스로를 파별난적(跛鼈亂跡) - 한 쪽 발이 망가진 자라가 절뚝절뚝 기어가며 남긴 어지러운 발자국 같은 볼품없는 삶이라고 겸손해하셨다.
마지막은 병든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중심을 지키는 선생의 방편이다.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도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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