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결: 거칢에 대하여

대빈창 2020. 12. 30. 07:15

 

책이름 : 결 - 거칢에 대하여

지은이 : 홍세화

펴낸곳 : 한겨레출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 1995) /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한겨레출판, 1999) / 『생각의 좌표』(한겨레출판, 2009) / 『결: 거칢에 대하여』(한겨레출판, 2020)

 

진보 지식인 홍세화의 책을 네 권 째 잡았다. 저자의 책 중에서 세 번째로 출간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한겨레신문사, 2002)은 일찌감치 절판되었다. 이가 빠진 것처럼 허했다. 의지박약에 아둔하기까지 한 나는 병든 세상에서 삶의 방향과 결을 이루는 나침반으로 저자의 사유에 기대었다. 흔들리는 나를 곧추세우려했으나, 근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했을 뿐이다. 홍세화에 다가가려면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을 알아야만 했다. 1979년 10월 박정희 유신독재는 ‘남민전’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해 조직원 84명을 구속했다.

남민전 중앙위원회 서기 이재문은 사형집행 전 1981년 11월 22일 고문으로 옥중사망 했다. 신향식은 1982년 10월 8일 사형 집행되었다. 안재구, 임동규, 이해경, 박석률, 최석진 등은 무기징역, 김남주, 이수일 등 핵심관련자 다수가 중형(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사건이 터지기 다섯 달 전 홍세화는 무역회사의 파리 지사로 발령받았다. 하루 아침에 프랑스 파리의 난민 신세가 되었다. 1999년 20년 3개월 만에 고국을 방문했다. 2002년 영구 귀국했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12쪽) 이른바 ‘KS' 출신이라는 우월의식, 엘리트의식을 버리고 실제 전투를 치르는 사병으로 남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저자를 보며 나는 고교시절 선생들을 떠올렸다. 기술 선생은 평교사로 정년퇴직했다. 그는 검은 머리카락을 한 올도 찾을 수 없어 더욱 늙어보였다. 선생의 사정을 짐작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를 진실되게 보았다. 엄지와 검지로 무지막지하게 교련 선생은 학생의 옆구리를 비틀었다. 고통에 찡그리는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는 개기름이 흐르는 낯짝에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교련 시간이 돌아오면 우리들의 얼굴에 공포가 묻어났다. 옆구리의 살점에 흉터가 남아날리 없었다. 날이 풀리면 체육 선생은 학생들을 일렬로 운동장에 세우고 때 검사를 했다. 생전 목욕탕 구경도 못한 촌놈들의 목덜미는 까마귀가 친구하자고 시커멓다. 그는 학생의 목덜미에 침을 뱉으며 씨부렁거렸다. “내 침이 니들 때보다 깨끗하다” 유신정권 시절 시골학교의 서글픈 풍경이었다. 후에 교련선생은 교장으로, 체육선생은 교감으로 승진했다. 그들의 의식에 제자는 없었다.

홍세화는 귀국 후 《한겨레》 기획의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을 거쳐 진보신당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을 맡고 있다. 은행은 2015년 2월에 문을 열었다. 이 땅은 벌금형을 받고도 돈을 낼 형편이 못 돼서 교도소에 들어가는 빈자(貧者)가 1년에 4만 명이나 되었다. 은행은 교도소에 갇혀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벌금액을 빌려 주었다. 이자도 없고 담보도 없고 신용 조회도 하지 않았다. 세계 유일의 한국에 존재하는 은행이었다. 현재 감옥의 강제노역 일당은 하루 10만원이었다. 벌금형 300만원을 받은 사람이 돈이 없어 제 발로 걸어 들어가 30일 동안 교도소에 갇혀 강제노역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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