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고고인류학개론 개정증보판
지은이 : 정기석
펴낸곳 : 펄북스
정. 기. 석. 이름 석자가 뇌리에 자리 잡은 이후, 나는 가끔 온라인 서적 검색창에 그를 검색하고 새로 나온 책을 일별했다. ‘마을주의자’ 정기석은 두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농촌공동체에 관한 책을 냈다. ‘마을기업’, ‘농민 기본소득’ 등의 개념은 그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농업회사 농장관리자, 유령작가, 생태마을 막일꾼, 농촌·귀농 컨설턴트, 마을연구원, 마을선생 행세로 전국을 돌아다닌 지 어언 20여년이 다 되었다. 사십 세에 서울의 도시 난민에서 농촌의 마을 시민으로 살겠다는 소망을 품고 길을 나섰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능히 먹고 살 수 있는 일터, 일과 삶과 놀이가 하나 되는 사람 사는 마을’을 찾아 12번을 이사했다. 참으로 고집스런 인생 여정이었다.
그는 현재 전북 무주 초리넝쿨 마을에서 비인가 〈마을연구소(Commune Lab)〉의 소장·급사로, 무허가 〈마을살이 공동체학교〉의 교장·소사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감응의 건축가' 故 정기용 선생의 10여 년 무주 프로젝트가 일구어 낸 공간 ‘무주’를 「정기용 씨를 기억하는 무주군민의 일상 및 인생」(121 - 123쪽)으로 드러냈다. ∥추천하는 글∥은 시인 박기영의 「한 아나키스트의 세상살이」였다. 나는 그의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모악, 2016)을 잡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가.
《펄북스》는 진주문고의 여태훈 대표가 차린 진주의 지역출판사였다. 진주가 영어로 펄이다. ‘펄북스 詩選’의 첫 책은 지리산 악양 시인 박남준의 등단 30주년 기념 시집 『중독자』였다. 표지그림이 묘했다. 짙은 안개가 휘감은 침엽수림을 응시하는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화가 김수동의 작품 「Human」이었다. 내가 만난 마을주의자의 첫 시는 「아버지의 혁명」(27 - 29쪽)이었다. 집 앞 텃밭 가장자리 모과나무 아래 잠드신 아버지를 추모하며 시 전문을 싣기도 했다. 마지막은 표제시 「고고인류학개론 개정증보판」(97 - 98쪽)의 전문이다.
칠팔백만 년 전 /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는 / 눈치를 채고야 말았던 것이다 // 먼 훗날 용케 / 호모 사피엔스로 진보한들 / 지질학적 지루함과 천문학적 공허함 말고 / 별로 남는 게 없는 인간의 교환가치 따위를 // 비극적 태생의 배경부터 / 중앙아프리카 정글이었고 / 희극적 생존의 무대마저 / 북아메리카의 투전판이라는 / 열악한 기초생활 환경의 서식조건을 // 인류학적으로 고찰해도 / 모든 인류의 일생은 전면적이고 / 모든 인종의 일상은 국지전일 수밖에 없는 / 우울한 현재의 기분과 불길한 미래의 조짐을 // 게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 맹수와 독충에게 굴복했듯 / 오모사피엔스 또한 / 맹수 같은 자본주의와 독충 같은 이기주의에게 / 사냥당하는 절대 취약계층의 가련한 신세를 / 최근, 유럽 어느 선진국의 동굴에서는 / 어떤 유인원들이 피눈물로 써 내려간 / 루시의 묵시록까지 발견됐다지 않은가 // 모든 인간은 모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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