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는 나다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허균(許筠, 1569 - 1618) / 이용휴(李用休, 1708 - 1782) / 성대중(成大中, 1732 - 1812) / 이언진(李彦瑱, 1740 - 1766) / 이덕무(李德懋, 1741 - 1793) / 박제가(朴齊家,1750 - 1805) / 이옥(李鈺, 1760 - 1815) / 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미쳐야 미친다』, 『우리 선시 삼백수』, 『한시 미학 산책』, 『일침一針』. 고전문학 연구가 정민의 책을 다섯 권 째 잡았다. 책은 조선 후기 문장가 여덟 명의 시론詩論을 소개했다. 저자는 시, 산문, 편지, 평설 등 수십 편의 문헌을 고증하여 조선 문장가들의 시에 대한 고민을 알기 쉽게 보여주었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나’였다. 詩에 있어 조선 전기는 형식지상주의에 매몰되었고, 중기는 학당풍學唐風이 성행했다. 18세기 후기에 이르러서야 조선풍朝鮮風, 이른바 시를 쓰는 주체, 나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떻게 써야 하는가’, ‘무엇이 좋은 시인가’라는 화두는 매한가지였다. 허균은 ‘시를 쓰는 목적은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진정한 나를 찾는데 있다’고 했다. 이용휴는 '내가 나와 만나 대화하고, 나를 찾아 내가 되는 시다. 내 안에서 거짓 나를 몰아내고 참 나를 길들이는 과정'으로 성대중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한다. 시와 사람이 따로 노는 것이야말로 재앙’이라고 했다. 이언진은 시에 있어 ‘투식과 격식’을 거부했다.
이덕무는 ‘천진과 진정을 잃은 시는 죽은 시요, 가짜 시다. 우리는 천진과 진정을 포착하여 간직하려고 시를 쓴다’고 했다. 박제가는 ‘시인은 진실을 담아 시대를 비출 뿐, 당위로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했고, 이옥은 ‘좋은 시는 제 맛과 제 빛깔을 지닌 것’이라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약용은 시와 문학과 사람살이의 길을 구분하지 않았다. ‘시 공부를 하려면 사람 공부가 먼저다. 사람이 되어야 시도 된다. 뜻이 서야 시가 산다.’고 했다. 조선 문장가들의 시는 허투루 단 한 줄도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자칭 활자중독자인 나에게 책의 인물들은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유일하게 생경한 이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천재시인 이언진(李彦瑱, 1740 - 1766)이었다. 그는 지금 시대로 말하면 요절한 시인 기형도였고, 시의 파격성은 ‘미래파’였다. 이언진은 이용휴의 시 제자로 신분은 역관이었다. 20세 때 1759년에 역과에 급제했고, 1763년 일본 통신사행은 시인으로서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48운 96구의 장시 「해람편海覽篇」과 「장단구長短句 병서幷序」를 접한 사행단과 일본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득의만만하게 고국에 돌아왔으나, 조선의 풍토에서 싸늘하게 외면당하자 그는 분을 못 이겨 병을 앓고 폭사했다. 고작 27세였다. 이언진은 ‘기존의 문학 규율에 얽매이지 않았다. 파격적 시상과 대담한 시어, 기존의 시 문법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실험까지 거리낌이 없었다.’(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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