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무를 심은 사람들
지은이 : 고규홍
펴낸곳 : 휴머니스트
『이 땅의 큰 나무』(눌와, 2003) / 『절집나무』(들녘, 2004) / 『옛집의 향기, 나무』(들녘, 2007)
책장에서 저자의 책들을 꺼냈다. 벌써 1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 그 시절 나는 산림학자 전영우와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의 책을 즐겨 잡았다. 앞서 잡은 세 권의 주인공이 이 땅의 노거수(老巨樹)였다면, 이 책은 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글은 55개 꼭지가 5개의 장에 나뉘어 실렸다. 공자의 영정을 모신 경기 오산 궐리사(闕里祀)의 250년 만에 다시 소생한 은행나무가 신기했다. 공자의 64대손 공서린(1483 - 1541)이 서당을 짓고 옮겨 심은 은행나무는 주인이 세상을 떠나자 나무도 생명의 끈을 놓았다. 세월은 흘렀고, 정조는 서당터의 은행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의 사당이 완공되자 궐리사라는 사액을 내렸다. 여기서 궐리(闕里)는 공자의 고향 이름을 딴 것이다.
영월 엄씨 시조 엄임의(? - ?)는 신라 경덕왕 때 파락사(波樂使) 신분으로 이 땅에 온 당나라 사신이었다. 파락사(波樂使)는 당 현종이 새로 지은 악장(樂章)을 주변에 알리려고 파견한 사신이었다. 안록산의 난으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그는 강원 영월 땅에 삶터를 마련했다. 영월 엄씨의 집성촌 하송리(下松里)에 그가 심은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 제76호가 되었다.
조국 신라가 망했다. 경주를 떠나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마의태자는 경기 양평 용문사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였다. 우리는 흔히 벼슬내린 나무로 속리산 정이품송을 떠올렸다. 조선 세조 때였다. 하지만 용문사 은행나무는 이보다 앞서 세종이 정삼품(正三品)보다 높은 당상직첩(堂上職牒)이라는 벼슬을 내린 나무였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이 땅 산천을 돌면서 나무를 심고 치성을 드렸다. 전북 진안 마이산 은수사의 천연기념물 제386호 청실배나무와 전남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천연기념물 제285호 느티나무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는 620살이 넘었지만 건강 상태는 여전했다. 키가 무려 34m로 국내 최장신 나무를 담양 출신의 두 시인 고재종과 최두석의 시를 통해 나는 앞서 만났다.
5장의 5꼭지에 실린 나무들이 나이가 가장 어렸다. 백범 김구(1876 - 1949)는 탈옥에 성공해 충남 공주 마곡사로 숨어들어 3년 동안 승려 생활을 했다. 해방 후 마곡사를 다시 찾은 김구는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날이 오면」의 시인 심훈(1901 - 1936)은 충남 당진에 필경사(筆耕舍)를 짓고 소설 『상록수』를 집필했다. 집을 다 짓고 시인은 한 그루의 향나무를 심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은 시상대에 올라서 가슴의 일장기를 부상으로 받은 화분으로 가렸다. 그 화분에 심겨진 나무는 대왕참나무였다. 지금은 서울 만리동 손기정 월계관의 기념수로 17미터를 넘게 늠름하게 자랐다. 제1호 ‘치유의 숲’은 전북 장성 축령산 편백숲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림왕 임종국(1915 - 1987) 선생의 땀방울이 맺은 결실이었다. 오늘날의 천리포 수목원은 ‘파란 눈의 한국인’ 민병갈(1921 - 2002) 혼자 힘으로 이룬 기적의 숲이었다.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은 20여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나무를 찾았다. 그는 문중에 전해 내려오는 문서, 절집에 살아있는 전설, 마을에 전해지는 민담과 설화 등을 모아 나무 이야기를 엮었다. 당당하면서 멋스러운 노거수(老巨樹)를 담은 컬러 사진은 독자의 눈맛을 시원하게 해, 책을 중간에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보기에 나무 인문학자가 저지른(?) 가장 그럴듯한 사건은 경기 화성 전곡리의 키가 35m나 되는 350살의 물푸레나무를 찾아내 천연기념물 제 470호로 등재시킨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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