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
지은이 : 최두석·나희덕
펴낸곳 : b(도서출판비)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천양희의 「직소포에 들다」에서 2003년 〈대한매일〉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김경주의 「외계」까지 현역 시인 63인의 시 64편이 실렸다. 두 번째 시인 강은교는 「비리데기의 여행노래」와 「운조」 두 편이 실렸다. 원로 시인에서 신예까지 다양한 경향의 시세계를 망라하여 한국시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책의 구성은 자선 대표시 1편과 그 시의 창작 과정과 시적 배경을 밝히는 에세이 1편이 짝을 이루었다.
자칭 활자중독자인 나는 잡식성 독서가답게 문학, 건축, 생태, 여행, 농사, 미술, 고전······ 등 분야를 막론하고 잡히는 대로 책을 잡았다. 문학에서 가장 늦게 접한 장르가 詩였다. 책장에 200여권의 시집이 얇은 어깨를 마주 했다. 시집을 잡은 지는 15여년이라는 짧은 세월이 흘렀을 뿐이다. 그동안의 허기를 메우느라 분주했었나보다. 낯선 시인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중 한 명이 詩전문 출판사 《도서출판 b》의 펴낸이 조기조였다. 시 「리듬」과 짝을 이룬 에세이 「리듬 만들기」를 통해 시인의 이력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199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스무살부터 기계공장의 노동자로 현장에서 문학수업을 쌓은 노동자시인이었다. 시인은 말했다. “한낮의 노동을 굳은 침묵으로 마치고 밤이 되면 두런두런두런 조곤조곤조곤 풀어가는 서사적 방식이 왠지 나에게 있어서 시적 고단함을 드러내기에 적당해 보였다.”(262쪽)
시인 친구 함민복의 詩는 「밴댕이」가 실렸다. 나는 즉각 2016년 6월에 KBS에서 방영된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 - 아버지와 밴댕이』를 떠올렸다. 그때 시인은 방송에서 읊을 신작시의 착상에 골몰하고 있었다.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아 시간에 쫓기던 마음 여린 시인이 안타까웠다. 나는 ‘가난한 아버지의 지갑과 신용카드처럼 얇은 몸피의 밴댕이’를 비유한 구절을 떠올렸다.
팥알만 한 속으로도 / 바다를 이해하고 사셨으니 // 자, 인사드려야지 // 이 분이 우리 선생님이셔!
나의 착각이었다. 시인의 또 다른 시 「밴댕이」였다. 에세이 「귀 기울이면 다 큰 말씀」에 창작 배경이 실렸다. 관음도량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를 가려면 지금은 자동차로 편하게 석모대교를 건너면 되었다. 시인이 시를 쓴 그때 석모도를 가려면 카페리호를 타야했다. 외포항에서 배 시간을 기다리며 젓갈시장에서 밴댕이젓갈을 구경하는 시인의 손전화가 울렸다. 민예총 강화지부에서 ‘밴댕이 축제’의 시화전에 걸 시 한 편을 보내달라는 전화였다. 강화도의 대표 바닷물고기는 밴댕이였다. 청어과의 밴댕이는 해마다 5 ~ 6월이 되면 산란을 위해 강화도 앞바다로 몰려들었다. 기름기로 두둑하게 살을 찌운 이때가 밴댕이 맛이 가장 좋을 때였다. 밴댕이의 내장은 유달리 작았다.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 속이 좁고 너그럽지 못한 심성을 가리키는 ‘밴댕이 소갈딱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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