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소를 웃긴 꽃
지은이 : 윤희상
펴낸곳 : 문학동네
나주 들판에서 /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 풀을 뜯는 / 소의 발 밑에서 / 마침 꽃이 핀 거야 /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 그것만이 아니라, /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 그래서, /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 하마터면, / 소가 중심을 잃고 / 쓰러질 뻔한 거지
표제시 「소를 웃긴 꽃」(36쪽)의 전문이다. 간혹 눈에 밟힌 詩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기어이 시집을 손에 넣고야 말았다. 시인의 고향은 전남 나주 영산포였다. 나주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의 발굽아래 마침 꽃이 피었다. 꽃의 생명력은 소의 무게가 짓누르는 중력을 이겨냈다. 나는 시인의 과장 섞인 표현이 아닌 생명력의 강인함으로 보았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식물(특히 질경이와 쑥)의 생명력은 무지막지한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뚫고 올라와 꽃을 피웠다.
1989년 문예지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이후 7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었다. 세 번째 시집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2014)까지 모든 시집은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부 구분 없이 62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박수연의 「되돌아오는 표현들」이었다. “그의 시들은 맑고 간결한 언어로 대상들을 그 자체로 풀어놓는 사랑의 성채”라고 평했다. 후반부에 연이어 실린 다섯 편의 시가 아프게 눈을 찔렀다. 「田榮鎭」, 「영진이 여동생」, 「칼에 갇힌 사내」, 「光州 五月團」,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5월 광주 시편들이었다. 앞날개 시인의 이력을 다시 본다. 광주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시인은 고교3년 때 80년 5월 광주와 마주쳤다.
대하양식장 한가운데 / 긴 말뚝을 세우고, / 말뚝 끝에 죽은 갈매기를 매달았다 / 바닷바람이 죽은 갈매기를 흔들 때마다 / 갈매기들이 바다 쪽으로 흩어진다 / 갈매기가 갈매기를 쫓고 있다 / 바닷가에 갈매기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 대하양식장 주인이 둑길을 걸어서 / 집으로 간다
「창후리에서」(55쪽)의 전문이다. 강화도 하점면 창후리에 시인의 발걸음은 언제 쯤 닿았을까. ‘창후리’는 교동대교가 놓이기 전 강화도와 교동도를 오가던 도선(島船)이 닿던 선창마을이었다. 면소재지에서 창후리로 가는 지방도는 들녘을 지그재그로 휘청거리며 건너갔다. 선창이 가까워지면 길 양안으로 대하양식장이 늘어섰다. 새우를 노리는 극성스런 갈매기들을 쫓는 방편으로 죽은 갈매기를 장대에 매달았다. 내가 사는 서해의 작은 외딴섬 은 산 갈매기를 잡아 뻘그물 말뚝에 묶었다. 주인은 밤낮으로 물때를 맞추어 그물에 닿아야 했다. 말뚝에 앉아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던 갈매기들에게 눈앞에서 물고기를 도둑질당했다. 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갈매기들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꼴이었다. 발이 묶인 갈매기의 놀란 날개짓은 동료들에게 위험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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