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대빈창 2021. 1. 19. 07:00

 

책이름 :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지은이 : 서효인

펴낸곳 : 민음사

 

아이티에서 진흙 쿠키를 먹는 아이를 보면서 밥을 굶지 말자, 진흙 같은 마음을 구웠다. 내전이 빈번한 나라처럼 부글부글 끓는다. 라면 같은 그것을 날마다 먹어야 한다. 스스로를 아끼자, 스프 같은 마음을 삼켰다. 한 장의 휴지를 아끼기 위하여 코를 마셨다. 자위를 삼갔다. 물로 닦았다. 성병 걸린 르완다 여자애를 떠올리며 성호를 그었다. 이마에서 배로 손가락을 옮길 때 손을 잘 씻어야지, 불현듯 다짐했다. 지진을 대비한 건물처럼 잘 휘어지는 마음. 변덕을 견디며 체위는 다양해져 갔다. 깨끗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품을 일으켰다. 부글부글 빨리 익었다.

 

시집을 여는 첫 시 「마그마」(13쪽)의 부분이다. 시집은 1부 ‘마그마’의 17편, 2부 ‘아주 도덕적인 자의 5분’의 17편, 3부 ‘핍진성’의 16편 모두 50시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박슬기의 「총력전 시대의 정치시- 들끓는 마음의 윤리」였다. 2006년 〈시인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2010년 첫 시집 『소년 파르티잔의 행동지침』에 이어 1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을 상재했다.

첫 시집이 후기 자본주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 주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전일적 자본주의 체제가 완성된 지구적 상황을 그려 낸 시들이었다. 1부 ‘마그마’의 시편들은 백 년 동안 세계를 휩쓴 국지전, 인종 청소 등 비극의 현장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아이티, 르완다, 베트남, 헤르체고비나, 체첸, 오키나와에서 시칠리아, 북해도, 관타나모, 리치몬드, 스탈린그라드,  산티아고까지.

시집은 2011년 제3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었다. '시대의 거부로 이어진 자유와 치열한 양심'의 시인 김수영을 기리기 위하여 〈민음사〉가 1981년 제정한 문학상이었다. 매년 9월 5일까지 후보작을 응모 받고, 10월에 수상작을 발표했다. 2005년 제24회 수상작은 시인친구 함민복의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으로 나에게 낯익은 문학상이었다. 제1회 수상작은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제2회 수상작은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제3회 수상작은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였다. 586세대의 나에게 80년대는 ‘혁명의 시대이며 시의 시대’였다. 초창기 수상작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0) 2021.01.21
물고기 여인숙  (0) 2021.01.20
사람의 산  (0) 2021.01.15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0) 2021.01.14
공포와 전율의 나날  (0) 2021.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