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대빈창 2021. 1. 21. 07:00

 

책이름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지은이 : 스티븐 핑거

옮긴이 : 김영남

펴낸곳 : 사이언스북스

 

정기구독하는 생태인문 격월간지 『녹색평론』의 서평란에서 처음 만났다. 좋아하는 시인 장정일의 책 리뷰였을 것이다. 군립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책 읽는 판사 문유석의 독서에세이 『쾌락독서』에서 책을 다시 만났다. 도서관에 발걸음을 했다. 153*225mm 신국판은 1,400여 쪽이 넘는 압도적 부피를 자랑했다. 귀여운 아기천사들이 핑크 표지를 수놓은 양장본은 한 손으로 들기에 버거웠다.

캐나다 출신의 진화 심리학자·인지 과학자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 1954 - )는 서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을지도 모르는 현상을 다룬다.(······) 어쩌면 현재 우리는 종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13쪽) 불과 100여 년 전 제1차 세계대전으로 1,500만 명이 죽었다. 80년 전의 제2차 세계대전으로 5,500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히틀러·스탈린·모택동의 광기어린 학살극은 불과 한 세기동안에 벌어졌다. 그 외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폴 보트의 킬링필드, 9·11 테러,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우크라이나 내전, 중동 테러 등 20세기를 지나 오늘날 21세기도 지구촌의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인류가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니.

스티븐 핑거는 전쟁, 약탈, 학대, 고문 등의 기록 사료와 고고학, 민족지학, 인류학, 문학 작품 등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하여 기원전 8000년 전부터 20세기에 이르는 폭력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 과거 어느 인류역사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라는 연구 결과를 끌어냈다. 그는 인류 역사를 평화화 과정, 문명화 과정, 인도주의 혁명, 긴 평화의 시기, 새로운 평화의 시기, 권리 혁명의 6개 시기로 분류하여 ‘폭력 감소’ 현상을 보여 주는 역사적 경향을 소개했다.

스티븐 핑거는 인류의 폭력성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다섯 악마와 네 천사를 내세웠다. 악마 같은 본성의 첫 번째는 포식적 폭력으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실용적 수단의 폭력이었다. 두 번째는 우세 경쟁·권위·위세·힘의 욕구로 개인 간에는 마초적 허세로, 인종·민족·종교·국가 집단 간에는 패권 경쟁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는 복수심·보복·처벌·정의를 지향하는 도덕주의적 요구였다. 네 번째는 타인의 괴로움에서 즐거움을 얻었다. 마지막은 이데올로기로 유토피아적 전망 앞에서 무제한의 선을 추구하는 무제한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인간 본성의 천사 같은 부분은 네 가지로 첫째, 감정이입은 우리가 남들의 고통을 느끼게 하고, 그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를 연결 짓는다. 두 번째는 자기통제로 충동적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고, 그에 따라 절제한다. 세 번째는 도덕 감각으로 같은 문화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을 다스리는 규범과 터부를 규정했다. 마지막은 이성의 능력으로 우리가 자신만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을 반성하고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표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는 1861년 3월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취임 연설에서 가져왔다. 책은 미국에서 2012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나라는 2014년에 1쇄를 찍었다. 젊은 번역가 김영남(당시 39세)씨의 손에 의해 유려한 문장으로 번역된 책은 제55회 한국출판문화 번역 부분을 수상했다. 빌 게이츠는 평생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저작으로 “나는 시간 활용이 상당히 엄격한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이 책은(아주 두껍지만) 들인 시간만큼의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고 추천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그 어느 때보다 폭력의 세기로 떠 올리는 것은 인간의 인지 방식의 ‘착각’이 원인이라고 스티븐 핑거는 말했다. 폭력적 죽음과 잔혹 행위에 대한 기억은 뇌리에 오래 각인되었다. 첨단시대의 대중매체는 현대인의 폭력을 시시각각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실제와 괴리가 있는 우리의 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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