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돌과 바람의 소리

대빈창 2021. 1. 26. 07:00

 

책이름 : 돌과 바람의 소리

지은이 : 이타미 준

옮긴이 : 김난주

펴낸곳 : 학고재

 

2000년대 초반, 故 최순우 국립박물관장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우리문화에 대한 나의 까막눈을 자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나는 출판사 《학고재》에서 출간된 책은 무조건 손에 넣었다. 그때 잡았던 책으로 건축분야의 지적 호기심을 일깨워 준 길잡이 책이었다. 이타미 준은 필명이었다. 본명 유동룡(庾東龍, 1937 - 2011)은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건축가로 드로잉, 그림, 조각, 도자기, 詩 등 전방위 예술가였다. 책은 1973년 3월부터 2003년 11월까지 일본 건축잡지 『신건축』과 『실내』등에 실렸던 글을 손질하고, 몇 편의 글을 덧붙였다. 이타미 준 건축물 41컷과 드로잉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글은 건축가의 인간적인 모습과 건축에 대한 열정, 한국의 전통 미(美)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1 - 5쪽 분량의 짧은 글에 담았다. 어릴 적 영혼을 매료시킨 풍경으로 시즈오카 시미즈의 후지강 ‘코아케’ 다리의 집, 이이쿠라의 낡은 아파트,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스틸링 건축, 파르테논 신전, 술집 ‘온자쿠 溫石’, 막사발의 죽, 주둥이가 깨진 백자, 흙으로 빚은 조각 등.

건축 인생에서 만난 잊지 못할 사람들로 사진가 무라이 오사무, 조각가 히야미 시로·이사무 노구치, 건축가 김중업, 화가 곽인식. 운명적으로 만난 건축으로 어머니의 집 〈시미즈의 집〉, 건축가의 아틀리에와 집 〈여백의 집〉과 〈먹의 공간〉, 폐자재 돌을 소재로 한 〈각인의 탑〉, 그 지방의 돌과 흙으로 전통적인 기법으로 지은 〈온양 박물관〉, 인사동의 미술관·화랑 〈학고재〉까지. 그리고 한국의 민가(民家), 한국의 정원, 종묘, 조선의 민화, 옛 가구, 벼루, 신라 불상, 조선 백자 등 한국 고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을 짧은 글에 담았다.

2004년 세계적인 아시아 박물관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은 최초로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 개인전을 열었다. 기메 박물관은 그에게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 국적을 초월하여 국제적인 건축 세계를 지닌 건축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200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훈장을 수여했다. 일본 최고 권위의 ‘무라노 도고상’은 일본 근대 건축의 아버지 무라노 도고(1891 - 1984)를 기념해 제정한 상이었다. 후보 작가의 3년 치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하고, 심사위원 10명의 만장일치제로 수여하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상이었다. 어느 분야보다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일본 건축계는 스스로 금기를 깨고 2010년 한국 국적의 유동룡(庾東龍)을 첫 외국인 수상자로 선정했다.

자연주의 건축가 이타미 준은 말했다. “조선 민화나 고가구, 백자 항아리처럼 튀지 않고 자연과 환경에 스며들어 빛나는 아름다움이 내 미의식의 기원이자 예술혼의 고향이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자연은 무한하다.” 제주도에 발길이 닿으면 나는 이타미 준의 건축물부터 찾게 될 것이다. 포도호텔의 제주 초가를 본뜬 둥그스름한 지붕은 오름의 부드러운 능선을 닮았다고 한다. 객실 하나하나가 포도송이처럼 망울망울 연결되어 이름을 붙였다. 방주교회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방주가 모티브였다. 건물의 3개 면은 얕은 물이 채워져 마치 물 위에 뜬 모습이라고 한다. 수(水)풍(風)석(石) 뮤지엄은 물과 바람과 돌을 주제로 한 작은 체험형 미술관이었다. 수(水)는 하늘이 담긴 물의 변화로 대자연의 움직임을 느끼는 공감으로, 풍(風)은 나무 기둥 사이로 통과하는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간으로, 석(石)은 멀리 산방산을 조방하며 명상에 잠기는 장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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