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대빈창 2021. 1. 28. 07:00

 

책이름 :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지은이 : 이태호

펴낸곳 : 학고재

 

조선시대 화가 3재三齋는? ①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 - 1759) ②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 - 69) ③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 - 1715) 또는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 1686 - 1715)

조선시대 화가 3원三園은? ①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경) ②혜원惠園 신윤복(申潤福, ? - ?) ③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 - 1897)

 

소위 내가 학창시절 배웠던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지식은 이처럼 단편적이었다. 보지도 않은 그림과 이를 그린 화가를 입에 줄줄 외웠다. 40대 중반에 들어 〈학고재 신서〉를 접하면서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책을 잡고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시 ∥김홍도 전∥에 발걸음을 했다. 그 시절 손에 넣은 두 권의 도록 『謙齋 鄭敾』과 『檀園 金弘道』가 아직 책장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미술사학자 이태호는 조선 후기 회화의 기본 성격을 1장 총론에서 이렇게 규정했다. “조선풍과 개성적 독창성을 가능케 한 조선 후기의 회화사상은 사실주의寫實主義 정신이다.(······) 세심한 대상 관찰을 통한 ‘실득實得'(윤두서)으로부터 살아있는 그림을 위해 현장 사생을 시도한 ‘즉물사진卽物寫眞’(조영석)으로 사실주의적 창작방식을 강조한 주장과 형상 묘사를 완벽하게 구현한 ‘곡진물태曲盡物態’(김홍도 그림에 대한 강세황의 평)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후기의 그림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13쪽)

2장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 - 1759)의 진경산수화는 한국회화사의 흐름 속에서 일대 변혁이었다.’(42쪽) 나는 겸재의 대표작으로 1734년작 〈금강전도金剛全圖〉를 손꼽는다. 부감법의 원형구도로 내금강의 전경을 한 화면에 집약한 구성과 힘찬 필세는 정선 화풍의 완성을 보여 주었다. 조선 후기 회화에서 진경산수화풍은 거대한 사조를 이루었다. 후배 화가들에게 한국의 실경을 표현하는 모범이 된 기본 화법이었다.

3장 풍속화風俗畵는 17세기말 - 18세기 초 공재 윤두서와 관아재 조영석 등의 선비화가가 기초를 쌓았다. 화원화가 단원 김홍도,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5 - 1822), 혜원 신윤복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김홍도가 완성한 농촌생활 풍속도의 성과는 김득신에게 충실하게 전달되었다. 신윤복은 중세 말기 변화하는 도회상의 풍속화의 세계를 추구했다. 내가 꼽는 대표작으로 단원檀園은 〈씨름〉, 긍재兢齋는 〈병아리를 채가는 들고양이〉로 도둑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채가자 그에 놀라 퍼덕이는 어미닭과 도망치는 병아리들, 그리고 마루에서 돗자리를 짜다 마루 아래로 엎어지는 남정네와 뒤 미쳐 쫓아 나온 부인네의 한바탕 소동을 보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혜원惠園은 냇가에서 몸을 씻는 여인네의 속살을 과감에 드러낸 〈단오풍정端午風情〉이었다.

4장 초상화와 동물화에서 압권은 단연 국보 240호로 지정된 공재 윤두서의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린 1710년작〈자화상〉이었다. 강렬한 눈빛은 그림이지만 차마 마주하기가 저어댔다. 터럭 한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사실성은 초상화에서 마음과 정신을 표현하는 전신傳神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가리켰다. 동물화에서 눈에 띄는 그림은 영조가 직접 호를 내리고, 친히 화제畵題를 “밤에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너의 임무인데, 어찌 낮에도 길 위에서 그러하냐”라고 쓴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 1696 - 1763)의 1743년작 〈삽살개〉였다. 그리고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 - ?)의 〈계자괴석도鷄子怪石圖〉, 김홍도·강세황이 같이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를 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다.

5장 사실주의적 회화론은 공재 윤두서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 - 1836)의 짧은 평전이었다. ‘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 三千尺’이 떠올려지는 표지그림은 겸재 정선의 〈박연폭도朴淵瀑圖〉이고, 뒤표지그림은 공재 윤두서의 손자 청고靑皐 윤용(尹愹, 1708 - 40)의 〈봄 캐는 아낙네〉였다. 책에 실린 176컷의 도판은 우리 옛그림에 눈이 어두운 이들을 위한 미술사학자의 배려였다. 그시절 나는 미술평론가·미술사학자 이태호의 책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90년대 저자를 꽤나 좋아했던 것 같았다. 세 권을 손에 넣었다. 『우리시대 우리미술』(풀빛, 1991) 『조선미술사 기행 1』(다른세상, 1999),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여성신문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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