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죽편竹篇
지은이 : 서정춘
펴낸곳 : 황금알
시인 서정춘은 전남 순천에서 가난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매산중고야간부를 다니며 신문 배달, 서점 점원, 군청 급사 등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기까지 시인은 가난과 독학의 세월을 살았다. 문단에 데뷔했으나 고졸 학력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한국소설의 미래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은 동갑내기 고향 친구였다. 친구의 소개로 입사한 직장이 동화출판공사였다. 28년 봉직한 첫 직장에서 퇴직하며 첫 시집 『죽편竹篇』을 등단한 지 29년 만에 세상에 내놓았다.
시인은 “시가 그렇게 좋은 것인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를 읽으면 현실의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문학평론가 김재홍은 표사에서 말했다. “처절한 삶의 아픔과 어려움을 시의 명제로 선택하여 한 편 한 편에 목숨의 총량을 실어 보여 주고 있다”고. 1996년 세상의 빛을 본 시집은 짧은 시 35편이 실렸다. 내가 잡은 〈황금알 시인선 125〉는 2002년에 이어 세 번째 나온 시인의 복간 시집이었다. 얇은 첫 시집에 실린 35편의 시는 한 해에 한 편을 썼다는 얘기가 되었다. 해설은 신경림 시인의 「곧고 매디가 있는 대나무 같은 시편들」 이었다. 시인의 결벽증은 「竹篇·1 - 여행」(20쪽)을 4년여에 걸쳐 80번을 퇴고推敲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시인의 대표작은 허름한 여관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번개같이 떠오른 시상詩想을 벽지에 휘갈겨 썼다고 한다. 인생을 대나무와 기차에 비유한 명시였다. 수직의 대나무와 수평의 기차 이미지, 그리고 시간과 공간, 인생과 여행의 의미를 5행 37자에 압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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