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
지은이 : 이지누
펴낸곳 : 알마
‘저곳이 절집이었던가. 먼 곳의 탑은 어슷어슷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그 모습을 내놓고 있다. 한 폭의 담채화인 양, 곁에는 진달래가 피었는가. 옅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보랏빛 농담濃淡이 출렁이며 에워싸고, 그 곁에는 새순이 돋아난 것인지 노랗게 물든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189 - 194쪽) 지은이가 영암 용암사터를 찾아 월출산 구정치九井峙를 넘어 구정봉九井峰을 에돌아 멀리 발아래로 내려다본 절터를 묘사한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나는 그동안 저자를 사진작가로 알았다. 그렇다. 이지누는 이 땅의 사진작가 가운데 가장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진도 금골산 토굴터 / 장흥 탑산산터 / 벌교 징광사터 / 화순 운주사터 / 영암 용암사터 / 영암 쌍계사터 / 강진 월남사터 / 곡성 당동리 절터 / 무안 총지사터
사진작가의 발길이 닿은 전남의 폐사지廢寺址였다. 한국 문화를 글과 사진으로 섬세하게 기록하는 작가 이지누의 자료 섭렵과 애정담긴 발품은 독자를 감동시키기에 족했다. 금골산 토굴터는 망헌忘軒 이주(? - 1504)의 『금골산록金骨山錄』, 탑산사터는 정명국사靜明國師 천인(1205 - 1248)의 『천관산기天冠山記』, 징광사터는 침굉 忱肱 현빈선사(1611-1684)의 육신보시, 운주사터는 조선 중종 25년(1530)의 『신증동국여지승람』, 용암사터의 담헌 澹軒 이하곤(1677 - 1724)의 『남유록南遊錄』, 쌍계사터의 선지善知스님의 『동명유고東溟遺稿』, 월남사터의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 - 1234)의 선시禪詩, 곡성 당동리 절터의 시인 조태일(1941 - 1999)의 민중시, 총지사터는 호남에서 가장 정교하게 지어졌다는 밀교적 성향의 사찰까지. 주변의 자연풍광과 조화를 이룬 절터를 담은 100여 컷의 사진은 명불허전名不虛傳 이었다.
어느날 책장의 농부시인 박형진의 산문집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가 눈에 잡혔다. 출판사가 《디새집》이었다. 한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이라 불리던 계간지 『디새집』의 편집자가 사진작가 이지누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저자의 책들을 군립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이 책과 충청편 『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 강원·경상편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과 우리 옛집을 어린 시절 이야기로 풀어놓은 『이지누의 집 이야기』가 도서관에 입고되었다. 아쉽게 폐사지 답사기 시리즈에서 전북편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가 품절이었다. 당분간 저자의 책들을 손에 펼칠 수 있었다. 마음이 부풀었다.
표지 문자를 보고 언뜻 강원 고성 금강산金剛山 건봉사乾鳳寺를 떠올렸다. 건봉사 일주문은 특이하게 기둥이 4개였다. 사악한 기운이 절내에 침범하지 못하게 기둥에 새긴 금강저, 능파교 좌우의 돌기둥에 새겨진 바라밀 문양을 찾았다. 나의 착각이었다. 표지 문자는 절 사寺의 고문자古文子였다. 표제는 월출산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 혜심의 詩에서 따왔다.
莫與心爲伴 마음과 짝하지 마라
無心心自安 무심이면 마음이 절로 편안하리
若將心作伴 마음과 짝한다면
動卽被心謾 자칫 그에게 속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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