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서재에 살다

대빈창 2021. 2. 4. 07:00

 

책이름 : 서재에 살다

지은이 : 박철상

펴낸곳 : 문학동네

 

정조(正祖, 1752-1800)의 홍재(弘齋) : 세상에서 가장 큰 서재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湛軒) : 몸과 마음이 깨끗하여 물욕이 전혀 없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연암산방(燕岩山房) : 산골짜기 연암골

유금(柳琴, 1741-1788)의 기하실(幾何室) : 『기하원본幾何原本』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수학과 역산학에 관심이 많았던 유금이 차용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팔분당(八分堂): 책만 보는 바보 ‘간서치(看書痴)’, 성인의 경지에 가깝게 다가서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사서루(賜書樓) : ‘사서’는 임금이 신하에게 서적을 하사하는 것으로 정조에게 내사(內賜)받은 서적을 따로 보관.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정유각(貞蕤閣) : 자신을 받아 준 정조에게 바치는 박제가의 마음

장혼(張混, 1759-1828)의 이이엄(而已广) : 허물어진 집 몇 칸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의 이아당(爾雅堂) : 군자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의미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여유당(與猶堂) : 아주 조심스럽에 행동해야 하는 처지.

김한태(金漢泰, 1762 - ?)의 자이열재(自怡悅齋) : 내가 즐겁다

서형수(徐瀅修, 1764-1845)의 필유당(必有堂)과 서유구(徐有榘, 1764-1845) 의 자연경실(自然經室) : 자손 중에 틀림없이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 자연이 만든 경전.

심상규(沈象奎, 1766-1838)의 가성각(嘉聲閣) : 경화세족의 상징

신위(申緯, 1769-1847)의 소재(蘇齋) : 소동파, 옹방강을 흠모한다

이정리(李正履, 1783-1843)의 실사구시재(實事求是齋) : 지식인만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문제 해결 방향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보담재(寶覃齋)와 완당(阮堂) : 옹방강, 완당을 존경한다

초의(草衣, 1786-1866)의 일로향실(一爐香室) : 제주 대정 유배객 김정희가 초의로부터 받은 차에 고마움의 표시로 소치 허련 편에 보낸 편액

황상(黃裳, 1788- 1870)의 일속산방(一粟山房) : 좁쌀만한 집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의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 : 백두개의 벼루가 있는 시골집

이조묵(李祖黙, 1792-1840)의 보소재(寶蘇齋) : 옹방강을 존경한다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의 삼연재(三硯齋) : 벼루 세 개를 가진 사람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해린서옥(海隣書屋) : 세상에서 나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니, 하늘 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웃에 있는 듯 하네

조면호(趙冕鎬, 1803-1887)의 자지자부지서옥(自知自不知書屋) :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자신은 안다

전기(田琦, 1825-1854)와 유재소(柳在韶, 1829-1911)의 이초당(二草堂) : 공동서재

 

조선 선비의 서재는 학문과 아취를 상징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서재 이름을 자신의 별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서재 이름은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단초이자 한 시대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었다. 다산(茶山) 정약용의 서재 이름은 여유당(與猶堂)으로 “여(與)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하고, 유(猶)가 사방에서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하라”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경구에서 따왔다. 다산은 젊은 시절, 조선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인재였다. 하지만 천주학을 접했다는 이유로 긴 세월 유배를 살았다. 다산은 자신의 남은 삶을 매사 신중하게 행동하겠다는 의미로 서재의 이름을 지었다. 여(與)는 큰 코끼리이고, 유(猶)는 아주 조심스러운 동물이다.

책은 서재에 담긴 이야기를 중심으로 북학과 개혁의 시대 19세기 지식인 26인의 면모를 그렸다. 저자 박철상(53)은 은행원이면서 古典연구가였다. 한학자 이셨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주말이면 1만권의 장서를 소장한 연구가로 변신했다. 깊이 있는 추사 연구서 『세한도』는 재야의 고수로 그를 각인시켰다. 그의 서재 이름 ‘수경실(修綆室)’은 '긴 두레박 줄의 방’이라는 뜻으로 장자(莊子)에서 가져왔다. “옛 학문이라는 깊은 우물물을 긷기 위해서는 긴 두레박 줄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저자는 말했다. "19세기처럼 외래문화에 노출된 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실마리가 바로 당대 지식인들의 서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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