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만취당기

대빈창 2021. 2. 9. 07:00

 

책이름 : 만취당기

지은이 : 김문수

펴낸곳 : 돋을새김

 

「온천가는 길에」 - 차관 고위직 물망에 오른 권력욕·금전욕의 화신으로서 국장의 이중인격을 그렸다. 국장은 죽음 문턱에 이른 노모를 시골 맏형에게서 강제로 모셔오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부의금을 노리고 4일장을 치르고, 장례를 마치고 부하직원과 온천가는 길에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나자, 책임을 부하에게 덮어 씌웠다.

「증묘(蒸描)」 - 소설가의 대표작. 어려서 삼촌의 죽음을 불러 온 조카와 청상과부가 된 숙모의 근친상간을 그렸다. 미모의 여자를 미행하다 눈치를 챈 그녀가 무단횡단하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사고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다방의 레지와 데이트하다 숙모를 발견하고 도망치다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아론」 - 동화풍의 소설. 인간에게 잡힌 서커스단의 곡예사 침팬지 아론은 연극에서 맡은 배역처럼 주인을 권총 사살하고, 침팬지 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침팬지의 입을 빌려 인간 세상의 포악성을 고발한 생태문학의 효시작품.

「파문을 일으킨 모래 한 알」 - 성수대교 붕괴를 다룬 작품. 아내는 남편 몰래 운전학원에 다녀 면허증을 취득했다. 친정 언니의 중고차로 남편을 버스정류장으로 데려다주었다. 버스는 불과 몇 초 차이로 대교가 붕괴되면서 한강으로 떨어져 남편은 죽었다. 아내는 악몽에 시달리고 알코올에 점차 중독되어 갔다.

「만취당기(晩翠堂記)」 - 표제작으로 산업화(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전통 촌락의 붕괴를 통한 한 집안 3대의 모습을 그렸다. 고가(古家) 만취당의 당호는 遲遲松澗畔鬱鬱含晩翠(저 시냇가의 소나무는 더디게 자라지만 무성하고도 늦도록 푸르도다)에서 따왔다. 소설 속 정승 3명이 배출될 것이라는 명당 만취당(晩翠堂)에서, 나는 경주 양동마을의 월성 손씨 대종가 서백당을 떠올렸다. ‘삼현선생지지(三賢先生之地, 세 사람의 현인이 태어날 길지)’라는 풍수적 명당으로 우재 손중돈(1463 - 1529)과 회재 이언적(1491 - 1553)이 태어났다.

세월 묵은 소설집이었다. 2004년에 출간된 〈돋을새김 作家 시리즈 001〉은 어렵게 오랜 시간이 걸려 군립도서관에 입고되었다. 2 ~ 30여 년 전 어느 문학상수상작품집에서 작가의 작품 한두 편을 읽었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엉뚱하게 작가의 이름에서 암행어사 박문수를 떠올렸다. 소외되고 학대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이만큼 시간이 흘렀고 어느날 불현듯 작가의 이름이 떠올랐다. 작가 김문수(1939 - 2016)는 고인이 되었다. 소설가의 뛰어난 중·단편소설 12편이 수록되었다. 표제작은 제2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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