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민어의 노래
지은이 : 김옥종
펴낸곳 : Human&Books
틈날 때마다 온라인 서적 검색창에 시인의 이름을 두드렸다. 지난해 초여름 시집이 출간되었다. 표제마저 『민어의 노래』였다. 생선회와 술잔을 줄곧 기울였던 지난 시절이 있었다. 술꾼들은 알 것이다. 여름은 민어, 겨울은 방어가 으뜸이라는 것을. 시인을 처음 접한 책은 섬 연구소 소장 시인 강제윤의 섬 여행기가 분명했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1부 마지막 시 「건정」과 2부 첫 시 「늙은 호박 감자조림」을 만났다. 시인의 첫 시집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막상 손에 넣자 아껴두고 싶은 마음에 이제서야 시집을 펼쳤다.
시인의 이력이 파란만장했다. 신안의 섬 지도에서 나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싸움에 이골이 났다. 고교 1년 목포에 유학 온 그는 조직에 스카웃되었다. 힘이 세고 싸움질 잘 한 행동대장이었다. 스물한 살 때 스스로 조직을 떠났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주먹세계에서 빠져나왔다. 건축기사로 일하다 킥복싱 선수가 되었다.1995년 일본 도쿄 코라쿠엔홀에서 열린 이종격투기 K-1 그랑프리 개막전에 출전했다. 한국 최초의 이종격투기 선수였다. 싸움질에 자신만만하던 그는 헤비급 무대에서 일본 선수에게 1회 KO패 당했다. 킥복싱 도장을 하던 그는 문을 닫았다.
1998년경부터 백반집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일손을 도왔다. 어느날 단골손님이 살아있는 광어를 들고 와 요리를 해달라고 했다. 처음 회를 떴다. 뜻밖에 손질이 보였다. 시인은 현재 광주광역시 북구의 식당 〈지도로〉의 주인장이었다. ‘도마 위의 시인’은 식재료를 만지며 요리하다 불현듯 문장이 떠오르면 곧장 메모하고 공굴려 시를 지었다. 그는 2015년 계간지 『시와 경계』의 제14회 신인 우수작 공모로 등단했다. 등단 5년 만에 선보이는 첫시집이었다. 요리사 시인은 말했다. “창의성 없는 요리사는 죽은 요리사”라고 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어 / 고등어 / 새우 / 꼬막 / 낙지 / 가오리 / 참돔 / 준치 / 홍어 / 복어 / 주꾸미 / 갑오징어 / 골뱅이 / 문어 / 우럭 / 숭어 / 광어 / 갯가재 / 감성돔
등 남도의 섬 출신 요리사답게 해산물이 뻔질나게 등장했다. 시집은 3부에 나뉘어 67 시편이 실렸다. 발문은 〈지도로〉의 단골손님이었던 시인 강제윤의 「시의 배를 채우는 요리사 시인의 노래」였다. 시인 강제윤은 출판사 Human & Books의 발행인 문학평론가 하응백에게 요리사 시인을 추천했다. ‘맛있는 시’가 실린 시집은 ‘휴먼시선 1’으로 출간되었다. 마지막은 「맹목 2」(88쪽)의 전문이다.
진눈깨비 거저구없이 내리는 날 / 어깨 넓은 친구에게 전화해서 / 세한의 맹목 숭어가 찰지더라며 / 묵은지 찢어 감아 먹고 / 새벽별이 단물처럼 쏟아질 때까지 / 흘러간 유행가나 부르자고 했다 // 여느 생이 있어 이보다 더 꼬숩겠는가.
여기서 맹목은 눈이 먼 숭어를 말한다. 겨울이 돌아오면 숭어는 지방질의 눈꺼풀이 눈의 흰 막을 덮었다. 한겨울 이때 숭어가 가장 맛있을 때다. 이웃섬 볼음도에 가려면 나도 모르게 군침이 목젓을 넘겼다. 학현이 형님은 시린 손을 불어가며 큼직큼직하게 숭어회를 쳤다. 섬의 겨울은 바람이 드셌다. 따뜻한 온돌방의 둥근 상에 빙 둘러앉아 묵은지에 싸서 먹는 숭어회 맛이라니. 회가 달았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르츠 캔디 버스 (0) | 2021.04.29 |
---|---|
두렵고 황홀한 역사 (0) | 2021.04.28 |
얼굴, 한국인의 낯 (0) | 2021.04.26 |
이젠 없는 것들 1 (0) | 2021.04.23 |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0) | 2021.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