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소년의 눈물

대빈창 2021. 5. 3. 07:00

 

책이름 : 소년의 눈물

지은이 : 서경식

옮긴이 : 이목

펴낸곳 : 돌베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에 이어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徐京植, 1951 - )의 책을 세권 째 잡았다. 1995년 일본에세이스트 클럽상 수상작으로 사회적 정체성과 문학적 감수성을 형성하는 소년 시절 읽은 책들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였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로 이어지는 저자의 성장사이기도 했다. 여는 글 「무리요의 〈소년〉」은 17세기 스페인의 화가 무리요가 그린 작품 속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림의 영어 제목은 ‘A peasant boy leaning on a sill'로 창턱에 기댄 아이를 그린 그림이었다. 저자는 leaning(기대다)을 learning(배우다)로 엉뚱하게 해석하여 배우는 소년의 즐거움에 대한 상상을 펼쳤다.

책은 첫 장 ‘내 독서 인생 최초의 책다운 책’으로 일본 불문학자 데라다 도리히코의 아내의 죽음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 낸 수필집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장은 알제리 독립운동을 이끈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로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소년 시절, 글을 모르는 어머니로 인해 번번이 학교의 급식비나 수학여행비를 제때 납부하지 못했다. 선생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눈물을 흘리던 소년은 에리히 게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의 주인공 마르틴 타라가 “절대로 울지 말자!”라도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서승의 『옥중 19년』과 서준식의 『옥중서한』을 통해 불행한 가족사를 알고 있던 나는 재일조선인 지식인의 영혼을 성장시킨 소년 시절의 독서 편력기로 읽을 수 없었다. 비전향 장기수로 조국의 감옥에 갇힌 저자의 두 형에 대한 구절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전에 읽었던 옥중편지와 감옥살이 경험을 담은 수기를 반추했다. ‘내가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인 1968년, 작은 형은 한국의 대학원(서울대학원 사회학과)으로 유학을 떠났다. 막내형은 그보다 한 해 빠른 196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한국유학(서울대 법학과)을 떠났다. 두 형들이 정치범으로 구속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971년 봄이었다.’(227쪽) 이른바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사건〉 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작은 형은 민단계 재일한국인 단체에 가입하여 한일협정 체결 반대투쟁에 나섰다. 경찰에 연행되어 취조를 받던 중 외무과 소속 경찰의 한국어 실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훗날 둘째형이 한국 유학을 선택한 간접적인 이유였다. “거봐, 저거 보라구, 역시 저 녀석 힘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막내형이 자신을 괴롭히는 악동을 한 주먹에 무릎 굽히는 것을 보며 둘째형은 의기양양했다. 막내 형은 탁월한 운동 능력의 소유자였다. 서준식은 독재정권의 잔혹한 고문에 맞서 51일간 단식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는 옥중의 편지글에서 말했다.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형을 세 명 두고 있다. 나보다 여섯 살이 많은 둘째형을 ‘작은 형’이라 불렀고, 열 살 위의 맏형은 '큰 형’, 내 바로 위 세 살 터울의 형은 ‘막내 형’으로 불렀다. 그리고 나보다 네 살 적은 막내 여동생이 있었다.”(44쪽) 둘째형·작은 형은 서승이었고, 셋째형·막내 형은 서준식이었다. 두 형들의 옥중수기와 서한을 먼저 잡았다. 20여년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두 형을 옥바라지했던 서경식의 책들을 이제 섭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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