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대빈창 2021. 5. 13. 07:17

 

책이름 :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김영사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는 풍요로웠던 18·19세기 조선의 학문·예술·문화 교류사였다. 부제 ‘다산·추사·초의가 빚은 아름다운 차의 세대’가 말해주듯 우리 차 문화를 부활시킨 3인을 중심으로 새로 쓰는 문화사였다. 300여 컷의 그림, 풍경 사진 자료는 독자의 이해를 도와 책을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750쪽의 두툼한 양장본에 지레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조선 차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필력은 쪽수를 더해 갈수록 한눈을 팔 수 없게 만들었다.

신라와 고려까지 흥성했던 우리의 차 문화는 조선 전기 이래 후기까지 거의 멸절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는 1775년 이운해(李運海, 1710 - ?)의 『부풍향다보扶風香茶譜』였다. 고창 선운사 인근의 차를 따서 약효에 따라 7종의 향약香藥을 가미해 만든 약용차에 관한 글이었다. 초의가 1837년에 지은 『동다송東茶頌』에 한 구절만 인용되었던 『동다기東茶記』는 그동안 다산의 저술로 알려졌다. 고전인문학자는 강진 백운동에 살던 제자 이시헌(李時憲, 1803 - 1860)에게 다산이 보낸 편지 실물 답사에 나섰다. 이시헌이 필사한 『강심江心』이라는 책자에서 이덕리(李德履, 1728 - ?)의 『동다기東茶記』과 『상두지桑土志』의 온전한 실체를 밝힐 수 있었다.

다산은 명실공히 우리 차 문화의 증흥조였다. 강진으로 유배 온 지 4년 후, 백련사에서 아암兒庵 혜장(惠藏, 1772 - 1811)선사와 교유를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다산의 『각다고榷茶考』는 중국 당대에서 명대에 이르는 각다에 관한 역사 사실 기록을 추출해서 간추린 차 문화사였다. 다산이 통상 마신 차는 잎차가 아닌 떡차였다. 오늘 날 차 제조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구증구포九蒸九曝는 숫자를 헤아려 아홉 번을 말 한 것이 아니다. 3회 이상 여러 차례 찌고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의미였다.

다산과 초의. 두 사람이 있어 조선 후기 차 문화가 빛났다. 1809년 초의가 초당으로 다산을 찾아와 배움을 청했다. 당시 다산은 48세, 초의가 24세였다. 『동다송東茶頌』은 차의 뜻을 기렸고, 차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가려 뽑았다. 차의 원류에 대해 통할 수 있도록 쓴 시였다. 초의차를 세상에 알린 직접적 계기는 금령 錦舲 박영보(朴永輔, 1808 - 1872)의 시 『남차병서 南茶幷序』였다.

나의 눈길은 추사의 걸작 『명선茗禪』에 대한 진안眞贋 시비를 명쾌하게 분석한 글에 오래 머물렀다. 추사秋史의 『명선茗禪』은 57.8센티미터X115.2센티미터의 대작으로 한 글자의 크기만해도 가로세로 각각 50센티미터가 넘었다. 글씨의 내용은 ‘초의가 자신이 만든 차를 부쳐 왔는데 몽정차蒙頂茶, 노아차露牙茶에 못지 않았다. 이를 써서 보답한다. 백석신군비白石神君碑의 필의로 병거사病居士가 예서로 쓴다’ 다산이 가장 아꼈던 강진 시절의 제자 황상(黃裳, 1788 - 1870)은 1849년 40년 만에 대둔사 일지암의 초의를 찾았다. 그는 재회 후의 소감을 長詩 『초의행草衣行 병소서幷小序』로 남겼다. 황상의 요청에 의해 초의가 꺼내 보여준 글씨는 「죽로지실竹爐之實」과 「명선茗禪」외 여러 점이었다. 명선茗禪은 추사가 초의에게 지어 준 별호였다.

초의 이후 모처럼 중흥을 맞이했던 우리의 차 문화는 초의가 세상을 뜨자 다시 잊혀졌다. 우리의 다도는 해방 이후 일본 다도의 흉내일 뿐 이식된 차 문화였다. 마지막은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걸명시乞茗詩 「아침에 한 사람에게 곤욕을 치르고, 저녁에도 한 사람에게 곤욕을 치렀다. 마치 학질을 앓고 난 것 같다. 장난 삼아 초의 상인에게 주다朝爲一人所困嬲, 暮爲一人所困嬲, 如經瘧然, 戱贈草衣上人」의 전문이다.

 

鬼瘧猶爲隔日難   하루걸러 앓느라 학질로 괴로우니

朝經暮又熱交寒   아침엔 더웠다가 저녁땐 오한 드네.

山僧似惜醫王手   산 스님 아무래도 의왕醫王 솜씨 아끼는 듯

不借觀音救苦丹   관음보살 구고단救苦丹을 빌려주지 않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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