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오스만 제국 찬란한 600년의 기록
지은이 : 오가사와라 히로유키
옮긴이 : 노경아
펴낸곳 : 까치
술탄(sultan) - 이슬람 세계의 세속 권력자 칭호
칼리프(caliph) - 이슬람 세계의 종교 권력자 칭호
하렘(harem) - 이슬람 제국의 여자들만의 공간
모스크(mosque) - 이슬람 예배당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가로 그 흔적이 현재 터키공화국으로 축소되었다는 사실과 몇 개 단어가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오스만 제국에 대한 하잘 것 없는 지식의 전부였다. 오스만은 아시아·아프리카·유럽 3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단일왕조였다. 전례 없는 6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존속한 제국이었다. 오스만 제국·터키 공화국 역사 전문가 오가사와라 히로유키(小笠原弘辛)는 제국의 600년의 기록을, 36명에 달하는 술탄들의 생애와 업적을 통해 파헤쳤다.
오스만은 14세기 초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의 변경 아나톨리아에 난립하던 투르크계 후국候國의 하나에 불과했다. 힘을 키워 아나톨리아를 통일한 후 유럽으로 진출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해 비잔틴제국을 멸망시켰다. 이란 동부, 북아프리카에서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전성기의 영토는 고대 로마이후 가장 강력한 지중해 제국으로 부상했다. 오스만 제국의 위세에 유럽 강국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메흐메드 2세는 제국의 새로운 수도 이스탄불의 궁전 정문에 ‘두 대륙의 하칸, 두 바다의 술탄’이라고 자신의 위력을 뽐냈다.
오스만 제국하면 악명높은 ‘형제 살해’라는 관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무라드 3세의 죽음으로 28세에 황제에 오른 메흐메드 3세(재위 1595 - 1603)는 즉위 직후 어린 동생 19명을 처형했다. 황제(술탄)가 바뀌면 형제들을 처형하는 것은 제국의 관습이었다. 관습은 15세기말에 법령에 명시되었다. 대개 지방의 태수로 나가있던 왕자 가운데 한 명이 군사를 이끌고 수도로 입성해 정권을 장악했다. 나머지 형제들을 처형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는 권력의 안정을 추구하는 방편이었다. 그동안 제국들은 후계자 다툼으로 분열하고 붕괴되었다. 1603년 메흐메드 3세가 죽고, 황제에 오른 아흐메드 1세(재위 1603 - 1617)는 ‘형제살해’ 관습을 없앴다. 황제의 형제들은 목숨은 유지하지만 '새장'(kafes)에 격리시켰다.
오스만주의는 다민족, 다종교의 공존을 지향하는 이념이었다. 발칸전쟁과 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오스만 제국은 맥없이 해체되었다. 18세기 유럽 기독교 국가들은 신성동맹을 결성했다. 오스트리아, 폴란드, 베네치아, 러시아가 오스만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맺은 동맹이었다. 19세기 초 민족주의의 싹이 튼 후에 과거의 신민들은 차례로 ‘민족 독립’을 성취하려 투쟁을 전개했다. 다양한 민족, 다양한 종교의 신도를 같은 신민으로 받아들였던 오스만 제국에게 어려운 시대였다. 발칸전쟁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장장 500년동안 제국의 중추였던 유럽의 영토 대부분을 잃었다. 이 전쟁으로 제국은 오스만주의를 포기하게 되었다. 1923년 10월 29일. 공화제를 선언하고, 터키공화국이 건국되었다. 600년이나 존속했고, 400년간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맹주로 군립했던 오스만 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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