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이젠 없는 것들 2
지은이 : 김열규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책은 한국학의 거장 김열규(金烈圭, 1932 - 2013) 교수가 ‘글로 풀어낸 민속박물관’이었다. 노학자는 열두 마당 백서른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한국인의 질박한 삶의 궤적에 천착했다. 이젠 없어서 사무치도록 그리운 우리네 풍경과 정서들을 두 권의 책으로 묶었다. 사진작가 이과용은 2년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103컷의 사진자료를 모아 현장감을 더했다.
2권의 여섯 마당은 지금은 멀어져 간 소리·냄새 그리고 풍습, 어린이들의 갖가지 놀이에서 생활 속 손에 익은 연장들,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장수들과 입에 익어 저절로 나왔던 노래들이 실렸다. 저자가 말하듯이 ‘그리움은 아쉬움이고 소망이다. 놓쳐버린 것, 잃어버린 것에 부치는 간절한 소망.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애달픔’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수닭의 울음은 이른 새벽에 더욱더 우렁찼다. 집 안이 떠나갈 듯, 소스라치는 울음소리에 온 식구가 잠을 깨곤 했다.(······) 한데 이제 그 울림은 사라지고 없다.’(34쪽) 나는 여적 수탉 홰치는 소리에 잠을 깬다. 대빈창 해변을 향하는 언덕 위 맞은 편 산자락의 닭장은 섬에 삶터를 꾸린 그때부터 있어왔다. 여명이 밝기 전, 수탉은 섬이 떠나가라 홰를 쳤다. 처음 한두 해, 곤한 새벽잠을 방해하는 녀석이 고약스럽게 여겨졌다. 해가 가며 수탉의 울음소리도 귀에 익었다. 비가 퍼붓는 새벽, 녀석의 홰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궁금증이 일었다.
‘그 옛날 제비는 으레 사람 사는 집의 처마 밑에 둥지를 틀었다. 진흙을 물어다가 지푸라기와 섞어 동그마하게 뭉쳐서는 둥지를 만들어 붙였다.’(55쪽) 어린 시절, 김포 한들고개 언덕집은 매년 봄이 찾아오면 제비가 둥지를 틀었다. 어느 해 현관 위 지붕을 썬라이트 투명지붕으로 바꾸었다. 제비는 강한 햇살을 피하여 집안 마루 위 사진액자에 집을 붙였다. 아버지는 제비집 밑에 오물낙하 방지용 두꺼운 골판지 종이를 대었다. 어느 날 점심, 온 가족이 마루의 밥상에 둘러앉았다. 그때 제비가 입에 흙덩어리를 물고 마루로 날아들었다. 녀석은 하필이면 짠지그릇에 똥을 떨구었다.
잦은 농약살포로 흙이 오염되어 제비가 사라졌다고 한다. 유기질 함량이 높은 섬 토양은 농약을 뿌리지 않고 수도작이 가능했다. 그런데 제비를 볼 수 없었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 제비집을 지을 재료의 턱없는 부족에 원인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날이 풀리자마자 농부들은 보온절충 못자리를 꾸몄다. 못자리에 물을 대고 평편하게 다졌다. 제비들은 물기가 흥건한 못자리 흙을 콩알만 한 크기로 물어 날랐다. 지푸라기와 뒤섞어 제비집을 지었다. 작금의 못자리는 플라스틱 모판의 인공상토에 볍씨를 뿌렸다. 제비가 물고 나를 흙덩이가 아예 없어져버린 세월이 되었다.
‘벼 베기며 보리 베기······ 'ㄱ’ 자 허리로, 'ㄱ’자 낫을 움켜쥐고 했던 그 일! 농부는 낫으로 알뜰히 곡식을 거두어 그들의 삶을 지탱해 나갔다.’(167쪽) 내가 농사일에서 가장 자신 없던 연장은 낫이었다. 특히 벼 베기가 서툴렀다. 벼 베기는 네 줄씩 차고 나갔다. 왼손으로 벼 포기 네 개를 앞쪽 방향으로 거머쥐었다. 오른손에 든 낫을 벼 그루터기에 대고 잡아당겼다. 낫이 잘 들어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꾼들의 낫을 숫돌에 슥삭! 슥삭! 갈아 되돌려주었다. 토막 난 삽자루 손잡이에 끼워진 숫돌에 물을 먹이며 낫을 가는 아버지는 특유의 리듬을 탔다. 양 어깨가 앞뒤로 들썩거리셨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국학자는 제기차기, 자치기, 비석치기, 닭싸움, 깨금발 뛰기, 여우 놀이 등 어린이들의 놀이가 사라지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옛날 놀이들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 유대감 나누기, 사회성 형성 등이 녹아 있었다. 요즘의 손자 손녀들이 즐기는 게임과는 다르다.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나만이 아니라 너와 나를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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