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미륵
지은이 : 요헬 힐트만
옮긴이 : 이경재·위상복·김경연
펴낸곳 : 학고재
지금 이 순간, 지친 나의 모습이 망막 한구석에 비쳤다. 나주시외버스터미널의 운주사행 버스는 발이 묶여 있었다. 9월초, 남도의 한낮은 염천이 무엇인지 가리켰다. 다시 광주터미널에 도착했다. 초록의 물결이 굽이치는 들판 외딴 곳에 나를 내려놓고 버스는 꽁무니의 매연을 매단 채 종점을 향해 달아났다. 운주사 입구까지 500여 미터를 걸었다. 배낭을 멘 폭염의 행군이었다. 운주사 천불천탑은 얕은 골짜기에 있었다. 석탑 12기와 석불 70여기, 새로 절집을 지을 건물부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운주사의 불상들은 제멋대로 생겼다. 못난 불상들이 가족처럼 바위절벽에 등을 기대었고, 돌무지 사이에 아무렇게 누워 있었다. 나는 먼 길을 찾아 갔으나 못 말리는 즉흥성으로 운주사의 상징 와불臥佛과 칠성석七星石을 뒤로 한 채 절터를 벗어났다. 일주문도 없는 운주사를 벗어나 민박할 곳을 찾아 버스 종점인 중장터를 향해 걸었다. 젊은 시절, 나의 발걸음은 이 땅의 산하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1996년 늦여름 나는 남도南道에 있었다.
독일인 예술철학자 요헬 힐트만(Jochen Hiltmann)은 조각가로 출발한 미술인이었다. 그는 1970 - 80년대 설치미술가 요제프 보이스와 유럽 문명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공동 작업을 전개했다. 힐트만은 현대문명에 의해 일그러진 인간성의 회복을 주장했다. 1985년 한국인 아내 화가 송현숙 씨와 함께 처음 한국 여행을 왔다. 전남 화순 천불동 만산계곡의 석불과 석탑을 처음 만났다. 그는 운주사의 실제 생활과 신앙 그리고 상징체계가 혼연일치가 된 천불천탑에 감동을 받았다.
1986년 힐트만은 교환교수로 다시 한국에 와서 반년동안 머무르며 운주사를 집중적으로 답사했다. 여기서 책의 텍스트들이 나왔다. 제1부 ‘용화세계’는 철학적 기행문 형식으로 운주사에 대한 기본 정보를 충실히 담았다. 산업문명과 휴머니즘, 삶과 예술, 진보와 이상주의 등 깊이 있는 성찰을 예술가 특유의 감수성 가득한 문장에 담았다. 제2부 ‘천불천탑’은 보고서의 정밀함으로 운주사 만산계곡의 천불천탑 하나하나를 소개했다. 힐트만 교수가 직접 찍은 80여 컷의 사진은 “땅에서 자란난 것 같은 농부의 심성을 닮은 미륵석불과 하늘로 오르려는 석탑의 형상미”(24쪽)를 하나의 통일체로 간주한 예술적 감수성과 예술론이 흠뻑 배어 있다.
표지사진의 불두는 계곡 서쪽의 1m20cm 높이의 커다란 미륵머리였다. 책은 전남 화순 천불동 만산계곡의 천불천탑에 대한 요헬 힐트만의 사진과 예술관을 모은 독일어판 『미륵-성스러운 돌들(Miruk-Die beiligen steine koreas)』의 한국어판이었다. 한스 요하힘 랭거의 독일어판 서문 「성스러운 돌들」과 작가 송기숙의 「천불동에서 찾아낸 한국 문화의 뿌리」가 뒤에 실렸다. 요헬 힐트만은 한국의 운주사 천불천탑에서 현대 산업사회의 위기에 대한 예술적 대안을 발견했다. “미륵석불은 각각 하나의 기호이고, 천불동은 하나의 질서를 보여준다. 전체로서 우주 구조의 형태이며, 물질계와 정신계를 아우른 구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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