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크로포트킨 자서전
지은이 : 표트르 크로포트킨
옮긴이 : 김유곤
펴낸곳 : 우물이 있는 집
세계 5대 자서전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 괴테의 『시와 진실』, 한스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을 꼽았다. 『한 혁명가의 회상』은 이 땅에서 1980년대 후반 출간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세례를 받은 소위 586 운동권에게 아나키즘이 보일 리 없었다. 그 시절은 “지금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은 공산주의이다”로 시작되는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경전이었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사회주의 혁명운동은 카를 마르크스를 수장으로 하는 공산주의 세력과 미하일 바쿠닌을 위시한 아나키즘 세력이 양분했다. 바쿠닌에 이어 국제 아나키즘 혁명세력을 이끈 지도자가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Петр Алексеевич Кропоткин, 1842 - 1921) 이었다. 황제의 시위(侍衛), 귀족, 노동자, 근위학교 학생, 관료, 지리학자, 탐험가, 군인, 행정관, 혁명가, 망명자, 첩보원 등 크로포트킨의 삶은 다양하고 극적이었다. 그는 출세가 보장된 러시아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황실 경호를 맡는 상트페테부르크 근위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시베리아의 아무르 카자크 기병연대에 지원했다. 크로포트킨은 29살 때 귀족세습권을 포기하고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사회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아나키즘의 권력 부정은 인간 개개인의 존엄에 근원을 두고 있다. 피땀을 흘리는 노동자가 자본가보다 궁핍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았으며, 인간은 이 굴욕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굴욕을 강요하는 권력을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간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사상은 인간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둔 것이다.’(498 - 499쪽) 따라서 국가는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 혁명은 민중을 억압할 수밖에 없는 국가나 정부를 철폐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에게 마르크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는 낡은 권력 장치였을 뿐이다.
『한 혁명가의 회상』은 『크로포트킨 자서전』으로 재출간되었다. 책은 1899년 망명지 영국에서 펴낸 57년간의 회고록이었다. 크로토포킨의 삶은 1899년부터 그후 사망까지 20년이 공백으로 남았었다. 1917년 2월 혁명후 그는 40여 년간의 망명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여생을 러시아 혁명에 이바지하기 위해 고국에 돌아왔다. 백군을 물리 친 볼셰비키의 창끝이 아나키스트에게 돌려졌다. 크로포트킨은 볼셰비키의 폭력적 권력 구축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혁명의 매장이다.” 1921년 2월 8일 새벽 크로포트킨은 불귀의 객이 되었다. 모스크바 교외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지에 잠들었다. 덴마크 작가 게오르그 브란데스는 말했다. “이 사람보다 청렴하고 인류를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자서전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유려한 문체로 기술했다. 그가 살아갔던 시대의 러시아 역사서이며, 19세기 유럽 노동운동사였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크로포트킨의 외침이 공허했다. “1억5천만 명으로 이루어진 러시아는 지구 인구의 1/8, 지구 대륙 면적의 1/6을 차지하는 로마 같은 제국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문명과 진보를 이룩하는 민족연합이 될 것이다.” 1991년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무너졌다. 소련은 러시아를 비롯해 15개 국가로 갈가리 찢어졌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신성한 지위가 무너진 지금 크로포트킨의 삶이 다르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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