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베토벤의 가계부

대빈창 2021. 5. 28. 07:00

 

책이름 : 베토벤의 가계부

지은이 : 고규홍

펴낸곳 : 마음산책

 

나의 책장에 나무칼럼리스트 고규홍의 몇 권이 책이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낯선 표제를 보며 나는 동명이인이 아닐까 고개를 갸웃했다. 나무 인문학자는 클래식애호가였다. 그는 우연히 어떤 책에서 음악사의 위대한 악성樂聖 베토벤이 동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만났다. 베토벤도 먹고 살아가는데 있어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의 생활인이었다. 궁핍이 극에 달한 베토벤은 엄청난 토지를 소유한 동생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동생 요한의 응대는

 

“형이 선택한 직업은 원래 생활을 곤궁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형의 궁핍은 형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책임도 형 스스로 져야 할 것입니다.”

 

“너의 돈은 필요 없다. 너의 설교도 필요 없다.”

 

비정한 동생에게 형 루트비히가 답했다. 베토벤은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렸지만 예술적 자존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베토벤은 작곡가의 길을 내핍 생활로 버텨냈다. ‘스승 하이든과 함께 마신 커피 6크로이체르, 초콜릿 22크로이체르’까지 지극히 사소한 지출까지 가계부에 기록했다. 『베토벤의 가계부』는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 - 1791)부터 20세기 최고의 러시아 현대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 - 1975)까지 서양 음악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22인 거장들의 ‘돈’을 키워드로 한 음악사였다.

 

모차르트 / 베토벤 / 파가니니 / 로시니 / 슈베르트 / 베를리오즈 / 멘델스존 / 쇼팽 / 슈만 / 리스트 / 바그너 / 베르디 / 스메타나 / 브람스 / 생상스 / 차이코프스키 / 드보르작 / 푸치니 / 말러 / 드뷔시 / 슈트라우스 / 쇼스타코비치

 

모차르트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사치와 허영으로 모두 낭비하고 한창 젊은 나이 서른다섯에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고액의 저작료를 받는 날이면 친구들과 화려한 만찬을 벌여 하룻밤에 적잖은 돈을 모두 써버렸다. 베를리오스는 이렇게 투덜댔다. “너무하다! 확실히 진정한 예술은 작가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 아마 언제라도 그럴 것이다. 이는 공정하지 못한 결과다. 심지어 두렵기까지 한 일이다.”(87쪽) 7년여에 걸쳐 전력을 기울여 쟁취한 슈트라우스의 저작권법 제정은 세계음악사·예술사 전반에 큰 획을 그은 업적이었다.

음악사상 한 작곡가의 단 하나의 작품을 위해 고유의 연주회장을 건립한 작곡가는 바그너 밖에 없다. 독일 프랑켄 바이로이트의 〈축제극장〉은 「니벨룽겐의 반지」 연주를 위해 건립되었다. 명실상부한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누린 푸치니는 스칼라, 메트로폴리탄, 코벤트가든이라는 세계3대 가극장을 무대로 삼은 최초의 작곡가였다. 빈 궁정 오페라극장 예술 총감독은 음악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꿈의 자리’였다. 1897년 불과 서른일곱 살의 젊은 말러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유로화를 쓰기 전 프랑스의 20프랑 짜리 지폐에는 드뷔시(1862 - 1918)가 그려져 있었다. 드뷔시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자부심과 예술에 대한 극진한 애정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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