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지은이 : 안토니오 그람시
옮긴이 : 김종법
펴낸곳 : 바다출판사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꽃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승만 독재 시절 한국정치를 바라보는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1952년 영국의 세계적 정론지 『타임스』가 게재한 글이다. 1952년 부산은 한국전쟁으로 임시수도였다. 국회의사당은 부산극장에 입주해 있었다. 헌병대가 부산극장에 난입해 국회의원들을 체포했다. 이승만 정권은 50명의 야당의원을 헌병대로 연행했다. 12명을 국제공산당 세력이라는 누명의 씌워 구속 기속했다. 국회가 대통령을 뽑는 제헌헌법 하에서 치러지는 1952년 제2대 대선은 이승만의 패배가 명약관화했다.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빨갱이 사냥’으로 국회를 무력화시켰다.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이었다.
표지그림의 장미는 가시가 돌출된 마른 줄기와 부스러질 것 같은 잎사귀 그리고 시든 꽃봉오리 위에 베니토 무솔리니로 보이는 인물이 선동적 제스처를 취했다. 줄기 아래 담배를 피우는 인물은 안토니오 그람시일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 - 1937년)는 이탈리아 지식인이자 정치가였다. 1926. 1. 공산당 총서기가 되어 이탈리아 공산당을 지도했다. 무솔리니 파시즘 정권에 체포되어 20년 4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감옥에 갇힌 지 11년이 되던 1937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옥중에서 이탈리아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사색을 통해 30권에 이르는 『옥중수고』를 남겼다. 책은 그람시가 잡지 등에 연재한 글과 강연 25꼭지를 6부에 나뉘어 실었다. 마지막 글은 1925년 하원에서 무솔리니 정부가 제안한〈비밀결사에 반하는 법안〉에 관한 의사진행 발언이었다.
독일 히틀러 나치 정권, 이탈리아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의 탄생은 쿠데타가 아니었다. 국민의 손으로 투표를 통해 선출된 합법적인 정권이었다. 1차대전 이후 닥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이 선택한 정권이었다. 그람시가 평생 연구 주제로 삼은 것은 ‘왜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이 자신들의 이익과 전혀 무관한 파시스트 독재를 더 지지하는가’였다. 오랜 숙고 끝에 얻은 답은 ‘무관심’ 이었다. 첫 꼭지 「무관심한 사람을 증오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독재 체제에 대한 묵인과 순종을 역설적이고 반의적으로 서술했다. “나는 살아 있고 삶에 참여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나는 삶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증오하며, 무관심한 사람을 증오한다.”(32쪽)
1920년대 초반 이탈리아에 파시즘 정권이 들어선 것은 민중의 정치적 무관심이 그 원인이었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로마에서 국가파시스트당을 결성한 것이 1921년이었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장악하고 그람시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1928년 그람시를 기소한 이탈리아 공안검사는 말했다. “위험천만한 그람시, 우리는 이자가 앞으로 20년 동안 두뇌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1918년 이탈리아 산업계의 폐기물 추문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주의자의 시각을 쓴 「통제 밖의 자본주의」에서 그람시는 말했다. “사회적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이 언제나 발휘될 수 있을 때만이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변화를 일으키려는 아무런 의지도 없는 채 자본주의에 지속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시도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이도 없다면,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의 무관심 속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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