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달빛을 깨물다
지은이 : 이원규
펴낸곳 : 천년의시작
시인 이원규는 지리산 시인, 은하수 찍는 사진작가, 오토바이 타는 시인, 운무화 작가, 환경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말해주듯 다방면의 활동을 펼쳤다. 그가 시인의 본업으로 돌아왔다. 『강물도 목이 마르다』(실천문학사, 2008) 이후 11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이었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76시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홍용희의 「몽유운무화夢遊運霧花의 견자」였다. 문학평론가는 시인을 ‘안개 치마를 입고 구름 이불 덮어’ 쓴 지리산의 야생화가 된 이 땅의 진정한 지리산인智異山人이라고 했다.
‘일생 단 한 편의 시’라는 부제가 붙은 3부의 16시편이 오래 망막에 남았다. 85살에 한글을 깨쳐 난생 처음 이름을 쓰고 운 김길순 할머니, 발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인 할머니, 한글을 배우고 백일장 나온 남해섬 꼬부랑 할머니,소쩍새 울음에 잠 못 이루는 섬진강 과부 할머니, 포항 죽도시장 어묵 할머니, 지리산 산내초등학교 일학년 촌놈의 시, 국토순례단 수경수님, 시인의 빈집을 보살피는 어머니와 갑장 뒷집 할머니, 용인수도원 사회복지사 산자야 누님, 지리산 요양보호사 미옥씨, 거제도 한복집 순자씨, 고향 문경의 첫사랑 소녀, 부여 송정 그림책마을 어르신, 산중 오지마을 논골 습지의 각시붓꽃, 안개 속의 야생화 몽유운무화를 찾아 헤매는 지리산 시인 등
시인은 1962년 경북 문경 탄광마을에서 태어났다. 홀어머니는 탄광 폐석더미를 뒤져 아들의 등록금을 댔다. 고 1때 가출해 백화산 만덕사에서 2년을 행자살이했다. 1980년 신군부의 10. 27 법난法難 때 붙잡혀 집으로 돌아왔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구 계명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8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잡지사 기자로 살아 온 서울살이 10년을 접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구례 피아골, 마고실 계곡, 문수골의 빈집을 돌며 23년 동안 8번 이사를 했다. 지금은 섬진강 건너 백운산 매화마을 인근 ‘예술공간 몽우夢遊’에 살고 있다. 시인 이문재가 표사에서 말했듯이 시인은 한반도 남쪽 전체가 자기 영토였다. 낙동강 줄기를 두 번, 지리산 둘레를 세 번 걸었다. 4대강 순례와 1년 간 탁발 순레,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지리산에서 임진각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89년 『실천문학』에 연작시 「빨치산 아내의 편지」를 발표했다. 첫 시집의 표제가 『빨치산 편지』였다. ‘산사람’ 아버지를 둔 시인의 가족사는 불행한 이 땅의 현대사처럼 무겁고 처절했다. 뒤늦게 시인의 첫 시집을 찾았으나 품절이었다. 산문집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오픈하우스, 2011년)가 첫 만남이었다. 처음 잡은 시인의 신작 시집에 매료되었다. 온라인 서적에 주문한 시사진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역락, 2019년)과 사진에세이 『나는 지리산에 산다』(Human&Books, 2021년)가 도착했다. 마지막은 「빈 손」(51쪽)의 전문이다.
겨울 산정에 올라 별 사진을 찍었다 // 일생 가난한 시인의 빈손 / 밤새 별빛 어루만지던 차디찬 손 // 몸살의 그대 뜨거운 이마를 가만히 짚어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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