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지은이 : 서경식
옮긴이 : 최재혁
펴낸곳 : 반비
저자는 표제를 ‘인문기행’으로 달았다. 단순히 인문적인 사실과 현상에 대한 고찰이 아닌, 직접 찾아가 그 지역의 풍토를 온 몸으로 느끼며 상상을 펼쳐가는 일이 필요했다. 디아스포라 서경식이 로마·페라라·볼로냐·밀라노·토리노에서 보았던 미술 작품과 들었던 음악, 읽었던 책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에 예술작품이 있었다. 프리모 레비, 나탈리아 긴츠부르크, 모딜리아니, 샤임 수틴, 잔 에뷔테른, 조르조 모란디,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노, 마리노 마리니, 주세페 스칼라리니, 오기와라 로쿠잔, 사에키 유조, 마리오 시오니 등.
이탈리아에 여러 번 여행을 갔지만 발길이 닿지 않았던 로마로, 27년 만에 이끈 것은 카라바조(1573 - 1610년)였다. 첫 장 ‘로마 1’은 참수에 매혹된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으로 시작되었다. 카라바조는 전 생애에 걸쳐 약 열 두점에 이르는 목이 잘린 사람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렸다.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는 1598년경에 그렸고,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직경 60cm 정도의 원형 방패 모양의 캔버스에 참수된 메두사의 얼굴을 묘사했다. 머리카락 대신 뱀으로 뒤덮인 머리, 사팔뜨기 느낌의 초점 맞지 않는 눈, 잘린 목에서 선혈이 솟구치고, 비명이 터져 나오는 벌린 입, 참수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었다.
1607년 또는 1609 - 1610년에 그려진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에서 참수된 골리앗의 머리는 화가의 자화상이었다. 두 눈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왼쪽 눈에는 생명의 잔광이 느껴지지만 오른쪽 눈은 이미 흐릿해져 버렸다. 카라바조는 스스로에게 절망하면서, 자신을 철저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화상을 그렸다는 사실에 저자는 화가에게서 ‘근대적인 자아’를 읽었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관광객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 도움을 주고 거스름돈을 챙기려는 할머니 사기꾼에게 당할 뻔한 저자는 말했다. “저런 사람들을 말끔히 정리해버린 것이 나치였어. 독일 국민 대다수도 ‘나치가 거리를 청소해줬다.’라며 그런 난폭한 해결책을 환영했고, 그 결과가 바로 홀로코스트로 이어졌지. 한국에서도 군사정권이 나치와 비슷한 일을 펼쳤고······.” 이 땅에서 TV 뉴스에 눈길을 주다보면, 노인네들의 입에서 영락없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삼청교육대가 그래서 필요한 거야. 저런 것들을 싹 쓸어버리거든” 모니터는 피의자의 현장검증 장면을 비추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1918년 작 「푸른 옷을 입은 소녀」를 보며 저자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군사정권의 간첩조작 사건에 몰려 조국에 투옥된 두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다 어머니는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노동으로 평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학교와 미술관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림 속 소녀에게 어머니는 공감하셨을 것이다. 저자는 전시회에서 사 온 복제화를 집의 계단에 붙여 두었다. 한국은 신군부가 광주에서 민중을 학살한 1980년이었다.
마지막 장 ‘밀라노’는 미켈란젤로(1475 - 1564년)의 스포르체코성에 있는 대리석 조각 「론다니니의 피에타」로 끝났다. 미켈란젤로가 89년 생애의 고투 끝에 만든 마지막이자 미완성 작품이었다. 정 한 자루 손에 쥐고 순백의 덩어리 속에 갇혀 있는 무언가를 깍아내어 바깥으로 드러내는 행위였다. 위대한 조각가는 몇 번이나 시도하다 도중에 그만 두었다. 저자는 이 작품과 마주하면 의문이 들끓듯 일어났다. 무릇 ‘미완’이란 무슨 의미일가. 예술에서 ‘완성’이란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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