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별식別食 하는 날

대빈창 2021. 5. 12. 07:00

휴일 햇살이 자글자글 했습니다. 혼탁한 대기의 황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오늘따라 송홧가루도 주춤하는 모양새입니다. 아차도, 볼음도, 석모도, 서검도, 미법도, 교동도. 서해의 섬들이 파란 바탕의 도화지에 돌연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읽던 책을 덮고, 운동화 끈을 매었습니다. 일찌감치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올 봄은 비가 잦아 천수답 다랑구지마다 물이 흥건했습니다. 관정에서 지하수를 퍼 올렸던 모터소리도 숨을 죽였습니다.

가을갈이를 한 무논을 트랙터가 써레질하고 있었습니다. 트랙터 뒤를 쫓아다니는 십 여 마리의 중대백로와 황로의 날개 짓이 분주합니다. 녀석들은 모두 황새목 백로과에 속하는 여름 철새입니다. 중대백로는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번져 흔하게 눈에 뜨이는 제법 덩치가 있는 녀석입니다. 암컷과 수컷 모두 온 몸이 순백색입니다. 부리와 눈 주위 그리고 다리가 검습니다.

황로는 머리와 목과 등 그리고 장식깃裝飾羽이 황색이고 나머지는 모두 흰색입니다. 학명은 Bubulcus ibis로, 여기서 Bubulcus는 ‘소와 관계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녀석들이 말·소 가까이에서 놀라 달아나는 개구리나 메뚜기를 잡아먹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중대백로와 황로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새 백 가지 』(현암사, 2001)을 참조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논의 써레질은 소가 아닌 트랙터의 몫이 되었습니다. 중대백로와 황로가 써레질하는 논에서 분주히 날개짓하며 트랙터의 뒤를 쫓는 이유는 특별난 별식別食 때문이었습니다. 겨우내 흙속에서 잠자던 미꾸라지가 트랙터가 일군 흙탕물에 숨을 못 쉬고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중대백로나 황로는 자기들에게 별식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소나 트랙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저어새는 점잔을 빼는지 아니면 트랙터 소음이 시끄러운지 멀찍이 떨어져 무논에서 한가롭습니다. 까치 한 마리가 난데없이 큰 흰새들의 무리 속으로 빠르게 날아들었습니다. 녀석을 덩더꿍 까치(?)라고 불러야겠습니다. 흰뺨검둥오리들은 갈아놓은 옆 논에서 부지런히 물갈퀴를 놀렸습니다. 다랑구지 들녘을 지나자 대빈창 해변의 해송숲입니다. 여지없이 까마귀들의 음산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녀석들은 떼거지로 모래밭에 발자국을 찍거나, 우스운 모양새의 겅중 걸음으로 갯벌의 칠게가 구멍에서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옛 사람들에게 흰색은 고고함과 깨끗함을, 검정색은 불결함과 더러움을 상징했습니다. 고려 말의 문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 - 1392년)의 어머니가 지은 시조입니다.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은 새오나니,

창파에 조희 씻는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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