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는 푸르름이 산하를 뒤덮어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입하立夏 입니다. 멀리 봉구산 기지국 철탑이 흰 구름을 들렀습니다. 나무마다 초록의 농담濃淡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파스텔 톤으로 신록이 짙어가면서 봄이 무르익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주문도 연못골의 둠벙입니다. 대빈창 다랑구지 들녘은 지하수 관정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가뭄이 심했습니다. 저수지를 앉힐 마땅한 터를 찾을 수 없는 지형입니다. 고심 끝에 연못골에 1300평의 둠벙을 팠습니다. 주위 논들을 둠벙으로 확장할 계획이지만 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를 도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못골은 지명 그대로 다시 물을 가두었습니다. 작은 섬 주문도는 중앙에 해발 196m의 봉구산이 자리 잡았습니다. 연못골은 봉구산의 물을 받아 바다로 쏟아내던 골짜기였을 것입니다. 비가 퍼부어야 잠시 물이 흘렀던 연못골은 군데군데 물이 괸 마른 골짜기였겠지요. 섬에 사람이 불어나면서 골짜기를 메워 논으로 경작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 나가면서 작은섬은 다시 비어졌습니다.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로 지구가 뜨거워졌습니다. 섬사람들은 연못골의 논에 다시 둠벙을 파고 물을 가두었습니다.
연못골 둠벙은 자연적으로 물고기가 생겨나겠지요. 최근 연구 성과에 의하면 잉어의 수정란을 먹은 청둥오리가 외딴 웅덩이에 배설하면 소수의 알이 부화한다고 합니다. 주말 아침산책을 나섰습니다. 일교차가 심한 요즘 풀밭은 이슬이 펑합니다. 쇠뜨기가 빠르게 키를 늘였고, 애기똥풀꽃이 가녀린 노란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게으른 감나무는 이제 어린 잎을 펼쳤습니다. 푸드득! 흰뺨검둥오리가 산책길 풀숲에서 놀란 날개짓으로 허공에 떠올랐습니다. 괜히 고단한 날개짓을 한 녀석에게 미안했습니다. 놈은 풀숲에서 알을 품고 있었겠지요.
다랑구지 들녘은 쟁기로 논흙을 갈아엎고 물을 담았습니다. 써레질을 기다리는 무논에 흰뺨검둥오리들이 헤엄쳤습니다. 길 떠날 시기를 놓친 기러기 몇 마리가 논두렁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어새가 홀로 먹이를 찾아 물속을 노려봅니다. 중대백로가 큰 날개로 허공을 사선으로 갈랐습니다. 나를 본 고라니가 당황스런 뜀박질로 폐그물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넘어 산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멧돼지는 화약냄새를 기가 차게 맡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써레질한 밭을 온통 들쑤셔 진탕구럭으로 만든 골치 덩어리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해조수수렵단이 섬에 들어오고, 녀석들의 그림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분명 이웃 섬으로 헤엄쳐 도망친 것이 틀림없습니다.
연못골의 둠벙은 흰뺨검둥오리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녀석들은 날개를 접고 고요한 수면에 한가롭게 떠다녔습니다. 두꺼비, 맹꽁이, 개구리가 둠벙을 자주 찾겠지요. 짧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철책을 제거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라니가 사람 눈치 안보고 찾아와 물을 마음껏 마셨으면 ... 둠벙에 물을 가둔 올봄 유달리 봄비가 잦았습니다. 4월에 115mm의 비가 내렸습니다. 모내기는 걱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연못골의 이름대로 물을 가두었고, 하늘은 그 뜻을 알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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