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시대의 끝에서

대빈창 2021. 6. 24. 07:00

 

책이름 : 시대의 끝에서

지은이 : 박경미

펴낸곳 : 한티재

 

신약성서학자 박경미(1959 - )의 책을 세권 째 만났다. 첫 번째는 번역서로 미국의 시인·문명비평가 웬델 베리의 현대과학 문명 전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삶은 기적이다』(녹색평론사, 2006)이었다. 두 번째는 『마몬의 시대, 생명의 논리』(녹색평론사, 2010)로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와 예수운동의 의미를 물었다. 『시대의 끝에서』(2017)는 이 땅의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성찰과 묵상으로 되물었다. 구약과 신약의 시대, 인물과 사건들을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모습과 과제들로 풀어냈다.

 

하느님의 나라, 동무들의 나라 / 농부 - 장인 그리스도 / 헤롯의 나라, 민중의 꿈 / 요한의 성령 이야기, 하느님의 사랑 이야기 / 로마제국과 바울의 평등사상 / 전승, 살아 있는 삶의 역사 / 네로의 세상, 지식인의 초상 / 시대의 끝에서

 

8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기후변화가 초래한 문명의 위기, 인류 생존의 위기에 대한 성찰과 극복을 담았다. 표제이면서 마지막 장으로 「시대의 끝에서」는 “신구약 중간시대와 초기 기독교시대에 융성했던 묵시문학의 근저에 깔린 생각은 ‘시대의 끝’에 대한 의식이었다.”(274쪽) 세계의 파멸을 선포했던 환상가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종말에 대한 어둠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생각했던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악마적인 제국의 붕괴와 함께 도래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었다.

「로마제국과 바울의 평등사상」의 도입부는 이 땅의 개신교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의 속류화된 개신교는 “오직 믿음만으로!”라는 루터의 슬로건을 ‘믿음’과 ‘행위’를 분리시켜 믿음의 실질적 내용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이 땅 보수 개신교의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교는 ‘믿음’이 ‘구원의 조건’내지는 요구사항이 되버렸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오직 믿음만으로!”라는 구호는 삶으로부터 유리된 신앙을 옹호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믿음’을 ‘믿음의 삶’으로부터 따로 떼어 ‘죽은 믿음’이 되게 만들었다.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한국 교회의 현실을 냉혹하게 평가한 교계 원로의 따끔한 일갈을 떠올렸다. 1990년대 초부터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이끄는 철학자 손봉호(孫鳳鎬, 1938 - )는 말했다. “교회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 어긋난다. 개신교 역사상 지금의 한국 교회만큼 타락한 교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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