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타인의 고통

대빈창 2021. 6. 21. 07:00

 

책이름 : 타인의 고통

지은이 : 수전 손택

옮긴이 : 이재원

펴낸곳 : 이후

 

나는 책을 tvN의 프로그램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만났다. 겨울 해가 일찍 떨어져 건강관리실에서 러닝머신을 타면서 벽걸이 TV를 켰다. 활자중독자로 영상매체와 거리가 멀었던 나는 모니터에 비친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프로그램은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현대인들의 무딘 감수성을 비판하고 있었다. 즉시 책을 손에 넣었고, 반년 만에 책을 펼쳤다. 그런대로 책을 손에 가까이 둔 삶이었다고 자부했으나, 저자가 낯설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 - 2004)은 미국의 소설가, 평론가, 사회운동가로 ‘동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문명의 수호자’라고 기만했다. 손택은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졌다”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미국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그녀를 ‘미국 문단의 다크 레이디’, ‘문학계의 핀업걸’, ‘지성계의 말채찍’, ‘문화적 조현병 왕국의 요정공주’ 따위의 부당한 닉네임으로 대우했다. 『타인의 고통』은 플라톤에서 울프에 이르는 작가들, 펜턴에서 월에 이르는 사진작가들, 스페인 내전에서 최근의 이라크 전쟁까지, 그리고 회화, 영화, 일화등을 통해서 전쟁과 재앙을 재현한 이미지의 역사를 살폈다. 실린 도판에서 나의 눈에 익은 사진들이었다.

 

로버트 파카,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 스페인 내전, 1937

로베르 두아노, 「시청 앞에서의 입맞춤」, 파리, 1950

조 로젠탈, 「이오 섬에서의 국기 게양」, 스리바치산, 1945

에디 애덤스, 「처형당하는 베트콩 포로」, 사이공, 1698

윌리엄 유진 스미스, 「목욕 중인 우레무라 토모코」, 미나마타, 1972

론 하비브, 「죽어 가는 이슬람 여인을 발로 차는 세르비아 민병대원」, 비옐지나, 1992

 

수전 손택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다룬 책”에 방점을 찍었다고 했다. 전쟁이야말로 타인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무대였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들이 사용되는 방식과 의미는 물론 전쟁의 본성, 양심의 명령까지 살폈다. 손택은 프랑스의 철학자 베이유, 영국 소설가 울프를 빌려 말했다. “폭력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숨을 쉬는 생생한 인간에서 사물로 변형되어 버린다.” 즉 “인간을 하나의 개인으로서, 인류로서 구별케 해줄 수 있는 바가 잔인하게 파괴되어 버린다”고.

부록으로 독일출판협회가 시상하는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제55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받고 행한 수상연설 「문학은 자유이다」와 2001. 9·11테러에 대응하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비판한 「현실의 전투, 공허한 은유」,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바보는 되지는 말자」와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바라보는 진보주의자의 시선 「우리가 코소보에 와있는 이유」까지 네 편의 글이 실렸다. 미국의 보수주의 교육단체 〈미국 대학이사·동창회 협의회〉는 “미국을 앞장서 비난하는 인사들 중의 한 명”으로 저자를 지목했다. 손택은 문학을 선택했기에 “국가적 허영심, 속물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운명, 불안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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