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
지은이 : 박성우
펴낸곳 : 창비
『거미』(창비, 2002) / 『가뜬한 잠』(창비, 2007) / 『자두나무 정류장』(창비, 2011) / 『웃는 연습』(창비, 2017)
나는 시인이 지금까지 출간한 시집 네 권 전부를 손에 잡았다.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창비, 2015)는 초판1쇄였다.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야 책을 펼치다니. 시인은 한때 모교의 교수였다. 강단에 선 지 삼년 만에 홀연 사직서를 내고 외딴 강마을에 컨테이너 작업실을 냈다. 자두나무 정류장 마을의 이팝나무아래 빨간 우체통이 서있는 집이었다.
전북 정읍시 산내면 수침동(종암) 마을은 섬진강 물줄기 옥정호가 내려다보이는 종석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었다. 시인은 작업실 창가에 앉아 일 년 남짓한 시간동안 사진엽서를 썼다.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았다. 첫 꼭지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쉬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음력 칠월 보름 백중날 마을 사람들 전부가 울력에 나서고 모시개떡을 쪄먹는 이야기에서, 마지막 꼭지 「엄동설한 바람막이, 산내면 청년들」은 대설 아침에 모인 마을 청년들이 상례마을 할매네와 안성대마을 노부부집 바람막이 공사하는 이야기까지 26꼭지가 모였다.
친구 갑선이는 블루베리 농사꾼 8년차, 고개 넘어 외딴집 온겸이네 유기농 가족, 우편배달원 현기 형은 폭설에 약 배달을 나섰다 넘어져 엉엉 울었고, 시인 유종화 선생은 아내가 죽자 끼니도 일터도 버렸다. 박새가 이팝나무 아래 빨간 우체통에 둥지를 틀고, 시인은 딸 규연이의 그림일기를 훔쳐보았다. 정류장 옆 자두나무는 마을의 유일한 총각 대혁씨가 심었다. 급성 뇌수막 패혈증으로 사지를 잃은 문청 동한이는 꿋꿋했다. 천구백리 십자가 순례를 떠난 세월호 두 아빠. 한때 문청이었던 못하는 게 없는 팽나무집 진섭이 형님. 다섯 명에서 일등하는 사내마을 열 살 소년 가윤이. 농사일·농민운동·정보화마을 운영자 친구 재원이는 다섯아이 아빠. 시인의 엄니 김정자와 큰엄매 김영례씨. 맥문동 농사짓는 승용이. 삼남사녀 칠남매를 둔 이필수·최영순 부부, 허궁실마을 이장 조성준과 부녀회장 아내 이수미. 시월초 열흘동안 열렸던 정읍 구절초 축제에서 음식 장만에 애쓰는 수침동 장수마을 사람들. 3편의 러브 스토리 - 콩나물 납품사업자 김종대와 아내 엄군자, 산골 중학교 동창 윤병희와 곽옥임, 소 키우는 마흔셋 시골총각 위순기와 커리어우먼 서울 처녀 김유리.
시인은 말했다. “번지르르한 겉보다는 늘어가는 굳은살로 세상사는 이치를 알아가는 사람의 삶이 크고 귀하고 소중”하다고. 마지막은 마지막 꼭지의 마지막 단락(255쪽)이다. 나는 여기서 울컥했다.
“겨울 따습게 보내고 오래오래 사세요.”
상례마을 할매네 집수리와 안성대마을 노부부 집 바람막이 공사는 다행히 해가 떨어지기 전에 끝났다.
“내가 내 갈 길 가버렸으면 젊은 양반들이 이 고상 안헐 턴디.”
청년들이 일을 하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던 상례마을 할매 눈이 이윽고 글썽해진다.
“내가 머시라고······ 얼매나 욕 봤는디······ 내가 머시라고 내가 머시라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할매는 돌담에 손을 얹고 서서는 골목 내려가는 청년들을 오래오래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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