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피터래빗 저격사건

대빈창 2021. 7. 14. 07:00

 

책이름 : 피터래빗 저격사건

지은이 : 유형진

펴낸곳 : 문학동네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시들, 이미 절판되어 오래된 명성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들,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연가戀歌가 여기 되살아납니다.”

 

문학전문 출판사 《문학동네》는 신간시집 시리즈 ‘문학동네시인선’ 150번째를 앞두고, 옛 시집 복간 시리즈 ‘문학동네 포에지’ 1차분 10권을 내놓았다. 중견시인들의 첫 시집이었다. 나는 이중 세 권을 손에 넣었다. 박상수의 『후르츠 캔디 버스』에 이어 두 번째로 손에 펼쳤다. 복간 시집의 「시인의 말」은 초판본과 개정판 두 개였다. 2005년 여름과 2020년 10월에 썼다. 시인의 첫 시집은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나왔다. 15년 만에 새얼굴을 문학동네에서 내밀었다. 3부에 나뉘어 50시편이 실렸다. 복간 시집은 발문도 해설도, 그 흔한 표사마저 없었다.

200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은 문단의 화제가 되었다. 문학평론가 조재룡은 “아무도 밟지 않고 드나들지 않았던 세계를 이 삶에서 창안하는데 몰두”했다고 말했다. 표제시 「피터래빗 저격사건」은 연작시였다. 3편 시의 부제는 ‘목격자’, ‘저격수’, ‘의뢰인’이었다. 문학평론가 김용희는 “몸을 낮게 숨기고 은폐된 장막 뒤에서 자본과 현실, 부르주아 문명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시인의 저격”이라고 평했다. 시인 유형진은 자유롭게 뻗어가는 이미지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면서도 그 밑바탕을 이루는 가상현실과 산업사회에 대한 예리한 겨눔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시집을 펼친 연륜이 짧았다. ‘피터 래빗’을 암살당한 유명인으로 어림짐작했었다. 어이없게 피터 래빗(Peter Rabbit)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였다. 한 세기 전, 영국작가 비아트릭스 포터에 의해 그림동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 피터 래빗은 20세기 아동문학 최고봉으로 손꼽혔다. 시골 농장과 숲속을 배경으로 피터 래빗이 친구들과 소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렸다. 그림동화는 23권의 시리즈로 우리나라에서도 전편이 완역되어 널리 읽혔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먹었다」(13 - 15쪽)의 마지막 연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별자리 이름의 바나나파이를 먹었는데 / 이제 바나나파이 같은 건 어디서도 팔지 않고 검게 변한 바나나는 할인 매장에 쌓여만 간다 / 나는 이제 노을 색 눈을 가진 토끼는 키우지도 않고 혼자 오는 저녁 길은 아직도 쓸쓸하다 / 여전히 사월엔 노란 바람이 불어오지만 아라비아 왕 같은 건 시뮬레이션 게임에나 나오는 캐릭터가 된 지 오래다 / 그리고 이제 죽음 같은 건 리코더 연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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