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대빈창 2021. 7. 16. 07:00

 

책이름 :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지은이 : 현기영

펴낸곳 : 다산책방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소설가 현기영(玄基榮, 1941 - )의 등단 41년 만에 나온 세 번째 산문집이었다. 작가는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아버지」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올해 초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소설가의 두 번째 산문집 『바다와 술잔』(화남, 2002)을 다시 잡았었다. 책은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코로나-19 정국 때문인지 뒤늦게 입고되었다. 나는 대여목록의 다른 책들을 뒤로 물렸다. 산문집은 소설가의 회고록으로 4·3작가로 살아온 지난날의 삶이 묻어났다. 14년 만의 산문집은 4부에 나뉘어 37편의 글이 실렸다.

1부 '인생길 끝에 뭐가 있는지 뻔한데 뭐, 그렇게 힘들게 갈 것 있나'는 노경老境에 들어선 작가가 왕복 12일 여정의 생명 한계선 해발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하고, 동강 어라연 계곡 산 속의 빈집 너와집이 세월에 풍화되어가는 모습에 자신을 비추었다. 산악회에서 북한산 산행을 즐기는 것은 이른 봄에 우중충한 회갈색의 빈숲에 꽃눈·잎눈이 트이는 경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동네공원을 산책하다 한시적 야생풀숲에서 두꺼비와 눈을 마주치고, 밀물에 바다에 잠기고, 썰물에는 드러나는 현무암 암반에 움푹하게 파인 조그만 웅덩이(깅이통)에서 놀던 어릴적을 회상한다. 깅이는 참게의 제주도 방언으로 참게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제주 자연의 본래 모습과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잔뼈가 굵는 작가의 어린 시절과 동무들을 그렸다.

2부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작가가 처음으로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순이 삼촌」을 집필하던 때를 떠올렸다. 중편소설은 1978년 창비에 발표되었다. 4·3사건이 발발한 지 삼십년이 되던 해 여름에 썼다. 비행기를 타고 고향 제주도를 찾던 작가의 눈에 강의 본류가 수많은 지류를 합류하여 점점 유역을 넓히면서 바다에 이르는 모습이 들어왔다. 신이 대지 위에 아로새겨 놓은 듯 참으로 거대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이었다. 우리 세대는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4대강을 참혹하게 유린했다.

3부 '당신, 왜 그 따위로 소설을 쓰는 거요'에서 첫 글 「선흘리의 불칸낭」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불칸낭’은 제주도 방언으로 불 탄 나무였다. 육십팔년 전 중산간 마을 선흘리에 군토벌대가 들이닥쳤다. 삼백여 채의 집이 소진되었고, 157명의 양민이 학살되었다. 마을 한 가운데 노거수老巨樹 상록수 후박나무가 방홧불에 불탔다. 마을당의 수백년 된 두 그루의 신목도 불타 죽었다. 용케 후박나무가 살아남아 그때 그 참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4부 '늙으면 흙내가 고소해진다는 말'은 한라산 가까이 이덕구 대장의 마지막 아지트 풀숲 속의 움막에서 돌담과 깨진 무쇠솥을 발견했다. 근처의 서있는 나무가 제낭(노린재나무)였다. 제낭은 자작나무의 제주도 방언이었다. 유격대원들은 자작나무를 불쏘시개로 썼다.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는 평지돌출의 산방산 지역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과 민중의 삶을 형상화했다. 대정고을 장두들의 제주민란 장제검란, 방성칠란, 이재수란이었다.

작가 현기영은 등단이래 권력과 금기에 맞서 잃어버린 역사를 문학으로 되살리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자신의 문학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문학은 ‘기억의 투쟁’이랄 수 있다. 독재정권이 생존자의 기억을 강제로 지우려는 ‘기억의 타살행위’가 그날 이후 행해졌다. 그렇게 지워진 기억들을 소환하고 진실을 구해내려는 기록의 과정”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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