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인간의 흑역사
지은이 : 톰 필립스
옮긴이 : 홍한결
펴낸곳 : 월북
나는 TV에 넋을 놓는 스타일은 아니다. 주말이면 프로야구에 눈길을 주다 낮잠에 빠져들었다. TV는 나에게 수면제 대용이었지만, 휴일 아침 MBC의 교양프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될 수 있는 한 빼놓지 않고 마주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것마저 시들해졌다. 그리고 활자중독자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온라인 서적을 서핑하다 『진실의 흑역사』(월북, 2020)를 만났다. 군립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했다. 막상 도서관에서 검색창에 저자명을 입력하니 『인간의 흑역사』(월북, 2019)가 한 해 전에 출간되었다. 먼저 나온 책부터 잡았다. 〈신비한 책 서프라이즈〉였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에티오피아 어느 강가의 너른 평원 위로 해가 둥실 떠오를 때, 젊은 암컷 유인원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9쪽) 책의 첫 문장이다. 인간과 유인원을 이어주는 ‘잃어버린 고리’로 각광받은 화석 ‘루시’의 죽기 바로 전 장면이었다.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는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언론인·작가 톰 필립스(Tom Phillips)는 현생 인류의 탄생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인간이 저질러 온 대실패(바보짓, 헛짓거리, 삽질, 뻘짓, 헛짓, 막장)의 민낯을 예술, 문화, 과학, 기술, 외교 등 10개의 주제로 정리했다.
프롤로그 ‘바보짓의 서막’은 9세기 북유럽의 ‘천하장사 시구르드’ 이야기로 열었다. 그는 적장 ‘뻐드렁니 마엘브릭테’의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고 의기양양하게 귀환했다. 며칠 후 천하장사는 어이없게 죽었다. 그가 말을 타고 달리는 동안 죽은 뻐드렁니가 시구르드의 다리를 계속 긁었다. 이빨에 긁힌 상처의 감염으로 죽은 것이다. 1981년 작은 도시 캘리포니아 수놀에서 시장선거가 있었다. 당선자는 보스코 라모스라는 잡종견이었다. 개는 인간 후보 2명을 누르고 당선돼 죽을 때까지 10년 이상 시장 자리를 지켰다. 주민들은 보스코 시장의 동상을 세웠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그 자체가 환경 재앙이 된 인간’, ‘지구 역사상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단일 생명체’라는 미친 포스를 자랑(?)했던 토머스 미즐리(Thomas Midgley, jr 1889 - 1994)가 가장 인상에 남았다. 그는 1920 - 30년 자동차의 노킹 문제를 해결했다. 연료에 납을 혼용한 ‘유연有鉛 휘발유’였다. 미즐리 연구팀은 생산하기가 너무 쉬워 특허를 낼 수 없다는 이유로 에탄올을 배척했다. 납은 신체적 질환뿐만 아니라 아동의 신경계 발달에 악영향을 미쳤다. 집단적 IQ 저하를 유발하며, 전 세계적으로 지적·발달 장애의 12퍼센트를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냉매로 쓰는 물질이 모두 비싸고 극도로 위험했던 1930년대, 미즐리는 ‘냉각’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목표는 값싸고, 불연성이고, 무독성으로 효과 좋은 물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가 찾아 낸 물질은 염화이불화메탄으로 ‘프레온’이었다. 1930년대 지구 성층권의 ‘오존층’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오존층은 해로운 태양 자외선을 막아주는 방패였다. 프레온 가스는 지구의 보호막을 갉아먹었다. 다행히 1970년대 인류는 오존층의 구멍을 발견했다. 그의 두 주요 발명품 ‘유연有鉛 휘발유’와 ‘프레온’은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 금지되거나 퇴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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