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야생초 편지

대빈창 2021. 8. 25. 07:00

 

책이름 : 야생초 편지

지은이 : 황대권

펴낸곳 : 도솔

 

나의 블로그 책 리뷰 첫 포스팅은 2007년 4월에 있었다. 내가 잡은 『야생초 편지』는 초판 22쇄, 2005년 8월에 나왔다. 나는 책을 잡고 생태평화운동가 황대권의 삶과 글에 이끌렸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열림원, 2006) / 『빠꾸와 오라이』(도솔 오두막, 2007) / 『바우 올림』(시골생활, 2007) / 『잡초야 고맙다』(도솔, 2012) / 『다시 백척간두에 서서』(쇠뜨기, 2020)

 

그동안 나의 블로그에 책 리뷰를 올린 저자의 책들이다. 책장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책을 26년 만에 다시 펼쳤다. 황대권(黃大權, 1955 - )은 고문조작에 의한 〈구미 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른이던 1985년부터  마흔 네 살이 되는 1998년까지, 황금 같은 청춘의 13년 2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나가는 야생초를 보며 나의 처지가 그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밟아도 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야생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닮고자 하였다.”(5쪽) 서문의 한 구절이다. 감옥에 갇힌 몸으로 만성기관지염을 고치려, 어쩔 수없이 민간요법으로 풀을 뜯어먹다 야생초野生草를 만나게 되었다.

책에 실린 글들은 동생에게 6년 동안 봉함엽서에 모나미 볼펜으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였다. 73꼭지의 글들은 5부에 나뉘어 실렸고, 추천의 글은 이해인(수녀·시인)의 「들풀 향기 가득한 생명의 고백서」였다. 글들은 야생초 관찰일기, 식물일기, 생명일기, 구도자의 사색일기, 수련일기였다.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귀중한 ‘옥중동지’가 아닐 수 없다.”(76쪽) 미대를 지망했던 데생 솜씨로 그린 야생초들은 독자의 눈을 맑게 씻어주었다. 안동, 대구, 대전 교도소에서 가꾼 풀들은 100여 종이나 되었다. 교도소는 풀도 마음대로 자라지 못했다. 황대권은 일 년에 한두 번 사회참관을 나갈 때마다 땅만 보고 다녔다. 다른 이들이 그늘에서 쉬거나 간식을 먹을 때 그는 야생초를 캐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쇠비름과 명아주, 고들빼기를 뜯어다 고추장을 찍어 ‘쌈’을 먹었다. 서리 맞기 전, 화단의 들풀을 거두어 된장에 무쳐 ‘들풀모듬’을 먹었다. 웃자라거나 촘촘하게 난 풀들을 가짓수대로 솎아 ‘모듬풀 물김치’를 해서 수인들과 나눠먹었다. 요로법을 마친 후에 쑥 우린 물로 입가심을 했다. 국화꽃 대여섯 송이와 산국꽃 두 송이, 아니스 씨앗 두어 개, 잘 말린 쑥 한 잎으로 ‘야초차’를 끊였다. 두충잎과 감잎, 쑥잎을 그늘에서 바짝 말려 가루를 낸 뒤 고루 섞어 ‘두감쑥차’를 만들었다. 민들레 뿌리, 냉이, 도라지, 시금치 뿌리, 고구마, 호박, 마늘, 사과, 인삼가루(약용 캡슐)로 ‘십전대보잼’을 졸였다.

표지그림은 엠네스티 40주년 기념달력(2001년 1월)에 실린 저자의 근영이다. 제목 왼쪽의 우편 소인에 찍힌 숫자는 편지를 쓴 날짜였다. 우표 소인에 그려진 그림은 편지글 「옥담 아래 뜀박질」에 붙인 그림이었다. 교도소의 흰 담과 황록의 미루나무, 코발트 빛 하늘아래에서 양심수 황대권은 담벼락을 따라 한정없이 뜀박질을 했다. 야생초 뿐만 아니라 동고동락하던 옥중 동지는 도둑고양이, 거미, 사마귀, 모기, 청개구리, 비둘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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