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끝없는 사람

대빈창 2021. 8. 30. 07:00

 

책이름 : 끝없는 사람

지은이 : 이영광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여전히 拉致中이고 / 暴行中이고 / 鎭壓中이다 // 計劃的으로 / 卽興的으로 / 合法的으로 / 사람이 죽어간다 // 戰鬪的으로 / 錯亂的으로 / 窮極的으로, 사람이 죽어간다 // 아, 決死的으로 / 總體적으로 / 電擊的으로 / 죽은 것들이, 죽지 않는다 // 죽은 자는 여전히 失踪中이고 / 籠城中이고 / 投身中이다

 

「유령 3」의 6·7·8·9·10연이다. 국가폭력으로 억울하게 스러져간 용산철거민 참사의 비극적 죽음을 형상화한 시였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픈 천국』(창비, 2010)의 여운이 오래갔다. 손에 잡지 않은 시집이 몇 권 남지 않았다. 『끝없는 사람』은 이영광(李永光, 1965 - )의 다섯 번째 시집이었다. 4부에 나뉘어 82시편이 실렸다. 시집은 인간의 몸을 주제로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질문했다. 시인은 현실의 위협에 맞춰 변화를 꾀하기보다 자신이 지금 감지하는 통증과 몸의 언어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사람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은 해설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에서 “오직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 순간 지옥을 겪을 수 있고, 매 순간의 경험을 거룩하게 정당화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라고 했다. 부제가 ‘유령 6’인 11쪽 분량의 마지막 시 「수학여행 다녀올께요」를 비롯한 「마음 1」, 「절반」, 「사월」 등 많은 시편들이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았다. 「박근혜 만세」는 김수영의 「김일성 만세」를 패러디했고, 「단 두 줄」의 부제는 ‘조정권 시인 영전에’였다.

시인 신경림은 “이 땅에 사는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을 섬뜩할만큼 치열하고 날렵하게 형상화하는 시인”이라고 추켜세웠다. 마지막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저지당한 자의 절망과 무기력'을 읊은 「재미」(67쪽)의 전문이다.

 

수백 수천의 벙어리들이 몸속에 산다 / 시끄러워 죽겠다

창밖은 언제나 공중이다 / 공중은 거대한 눈알이다

그는 베란다에 매달려, / 쇠창살을 쥐고 괴성을 지르는 / 동물원 영장류처럼

나에겐, 재미가 없다 / 재미라곤 없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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