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지은이 : 함민복
펴낸곳 : 시공사
○ ○ ○ 친구에게 좋은 글 많이 쓰시게 늘 행복하고. 2009 가을 함민복 - 『미안한 마음』(풀그림, 2006)
○ ○ ○ 님 늘 고맙고 멋진 날들 보네시오 2012. 7. 9 함민복 드림 - 『미안한 마음』((주)대상미디어, 2012)
○ ○ ○ 님 고맙습니다. 2021. 봄 함민복 올림 -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시공사, 2021)
‘이 책은 2006년에 출간한 산문집 《미안한 마음》에 새로운 원고를 덧붙여 펴냈습니다.’ 나는 시인 친구를 둔 덕분에 그의 휘날리는 듯한 멋진 자필서명이 쓰인 시집·산문집 전부를 갖고 있다. 두 번째 동시집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문학동네, 2019)가 출간된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반갑게 첫 시집 『우울씨의 일일』(문학동네, 2020)과 산문집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가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그동안 시인이 보내 준 책을 넙죽넙죽 받기만 하던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봄에 시인을 만나면서 온라인으로 손에 넣은 책 두 권을 들고 갔다.
책장의 먼지가 뽀얗게 앉은 산문집 『미안한 마음』두 권을 빼 들었다. 출판사 《풀그림》은 시인의 후배가 꾸린 신생출판사였다. 출판사는 곧 문은 닫았고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은 절판되었다. ‘자선이가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29쪽) 시인의 대학동창 친구 정자선은 1991년도 『세계의 문학』에 「깡마른 남자」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두 번째 『미안한 마음』을 반양장으로 재출간한 (주)대상미디어는 친구가 꾸린 출판사였다. CD케이스 만드는 공장을 하는 친구는 공장식구들의 뱃놀이 야유회로 배를 예약했다. 급한 일이 생겨 해남 바닷가가 고향인 아버지와 어머니만 모시고 강화도의 친구를 찾았다.
책은 산문집散文集이 아닌 시문집詩文集이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45꼭지가 5부에 나뉘어 실렸다. 시인의 시 20편이 감성어린 사진 33장과 함께 실려 독자의 눈을 밝혔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은 25년 전 강화도 마니산에 올랐다가 산에서 바다로 뻗어나간 풍광에 매료되었다. 동막교회를 오르는 길옆 허름한 농가에 둥우리를 틀었다. 글들은 시인이 처음 강화도에 뿌리를 내렸던 십 년간의 기록이었다. 글의 배경은 두 가지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어선을 타고 텃밭을 가꾸고, 동네 잡일을 하는 섬사람과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충북 노은 문바위 산골마을의 유년기 이야기였다.
나는 글을 읽어나가다 ‘미안한 마음’이 든 글귀를 세 번 만났다. 시인은 아카시아 꽃향기가 밤새 담장을 넘어오는 것도 모르고 잠만 잔데서. 여자 동료와 술 먹다가 이모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가 이모를 살갑게 대하자, 어머니는 며느리 기대로 먼 길을 찾아왔으나 아들이 여전히 혼자인 것에 실망한 것에. 콤바인으로 벼를 베다 도망갔던 고라니가 다시 돌아와 동네 아저씨들이 막대기를 들고 포위를 좁혀가다 다른 고라니를 발견하고 슬그머니 막대기를 내려놓았을 때. 마지막은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187쪽)의 전문이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 쉽게 만들 것은 / 아무것도 없다는 /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 수천수만 년 밤낮으로 / 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 / 소금물 다시 잡으며 / 반죽을 개고 또 개는 /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