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년중 낮 시간이 가장 긴 절기인데 하늘이 어두워져오고 있었다. 대빈창 해변 제방에 들어섰다. 바위벼랑 반환점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거센 광풍이 휘몰아치며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뛰다시피 걷던 마을주민 세 명이 나를 지나치며 말했다.
“도지가 몰려 온다.”
'도 - 지, 도 - 지' 나는 낮게 중얼거리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들은 뜀박질로 나와 빠르게 멀어져갔다. 동녘에서 빠른 속도로 하늘을 뒤덮으며 쫓아오던 먹장구름이 나를 추월했다. 볼음도 해변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검은 구름이 덮쳐 들었다. 대기는 낮 동안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갑작스럽게 바람이 몰아치며 작은 섬을 휩쓸었다. 나는 바람결에서 미세한 물기를 감지했다. 발걸음을 뒤돌려 빠르게 마을로 향했다. 봉구산 옛길을 에둘러 갈 시간이 없었다. 대빈창 다랑구지 들녘 중앙 농로를 가로질렀다. 돌풍이 미친듯이 휘몰아쳤다. 바람에 벼포기가 일렁이며 녹색 파도가 밀려왔다.
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후 -두 - 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손전화는 호우주의보, 강풍주의보 메시지를 다급하게 쏟아냈다. ‘도지’는 급작스럽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가리키는 주문도 방언 같았다. 비를 몰고오는 바람이었다. 나는 김포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들고개 언덕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소나기를 몰고 먹장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어오면 아이들은 팬티만 입은 채 들녘을 향해 내달렸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벌거벗은 온 몸을 난타했다. 그들은 축제를 만끽하며 함성을 질러댔다. 산성비가 두려운 시절, 돌이켜보면 이제 옛일이 되었다. 한시간 남짓 빠르게 사위가 어두워지며 굵은 빗방울이 흙바닥을 때려 먼지가 일었다. 며칠을 푹푹 삶아대던 폭염을 식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일찍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마당의 아스콘에 물기 한점 없엇다. 폭염은 이른 시간부터 표창같은 햇살을 지표에 내리꽃았다. 어제저녁 강우량은 2mm 였다.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빗방울 듣는 소리가 난다.” 황순원 『소나기』의 한 문장이다. 내가 알고 있는 ‘소나기’의 유래는 민중어원설이었다. 어느날 한낮 두 농부가 들녘에서 소를 몰아가며 일을 했다. 하늘 한 구석에서 먹구름이 빠르게 몰려오고 있었다. 한 농부는 곧 비가 쏟아질 것이라고. 한 농부는 그렇지않다고. 말싸움은 결국 내기로 번졌다. 농부들은 소牛을 걸었다. 전 재산을 건 내기였다. 먹구름은 세차게 비를 쏟아부었다. ‘소내기’가 시간이 흐르면서 ‘소나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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