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도시의 나무산책기
지은이 : 고규홍
펴낸곳 : 마음산책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의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였다. 도심의 조경수 개잎갈나무에서 순백의 꽃 옥매까지 대표적인 나무 38종을 다루었다. 나무의 생태와 일상생활의 쓰임과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맛깔스런 글 솜씨로 풀어냈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 89컷과 각각의 나무에 관한 식물학적 표준 정보를 별도로 달았고, 작은 크기의 꽃과 열매 사진을 덧붙였다.
개잎갈나무는 아라우카리아, 금송과 더불어 세계 3대 조경수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 ‘히말라야시다’로 불리는 나무였다. 나의 모교 교목校木이 히말라야시다였다. 레드컴플렉스에 찌든 어린 국가주의자(?)였던 나는 외래종 교목에 불만이 컸다. 외국어(영어, 일어)를 등한시해 대학입시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승용차 안에 서너 개의 모과 열매를 담은 작은 바구니’(30쪽) 주먹만한 탐스런 모과를 기대하며 아버지의 수목장 나무로 모과나무를 택했다. 아버지께 명절마다 막걸리를 대접했다. 나무는 엄지손가락처럼 가늘고 길다란 보잘것 없는 열매를 수없이 매달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국립공원의 세계에서 가장 큰 높이 115.72미터의 세쿼이아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거인족‘히페리온’에서 따왔다. 우리나라는 전남 담양의 세쿼이아 가로수가 유명했다. 나는 마지막 답사처로 담양을 남겨놓았다. 소쇄원, 명옥헌의 별서정원과 조선시대 인공조림의 유산 관방제림과 함께 세쿼이아 가로수길에 발길이 닿을 것이다.
안토시아닌 성분은 해충을 막는 방충제 역할을 했다. 낙엽에 많은 성분으로 뿌리 주변의 땅 밑에 스며들어 나무가 무방비 상태로 겨울잠을 자는 동안 스스로를 지켜주었다. 산딸나무는 도시든 시골이든 가리지 않고 인기좋은 정원수였다. 곧게 솟아오르는 줄기에서 수평으로 층을 지어 퍼지는 가지가 아름다운 수형을 이루었다. 거기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길쭉이 뻗은 꽃자루 위에 하얗게 피어나는 꽃송이가 장관이었다. 나는 하루 두 번 산책에서 대빈창 해변 반환점 바위벼랑의 산딸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철쭉 꽃송이 안쪽의 까만 점은 꽃잎 끝부분의 한쪽에서 시작해 암술의 뿌리, 즉 꿀샘이 있는 쪽으로 이어진다. 이 까만 점은 꿀샘이 있는 자리를 꿀벌에게 안내하는 길의 표지다.(136쪽) 나무의 꽃이 마치 밥풀데기를 모아놓은 듯한 모양이어서 밥풀데기 나무라고 부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박태기 나무가 되었다. 우리집 뒤울안 화계花階 모퉁이에 박태기나무 한 그루가 10여년 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봄이 돌아오고 박태기나무에 꽃이 피면 우리집 마당이 다 훤해졌다.
밤나무가 제사상에 오르게 된 것은 밤을 땅에 묻고 싹이 터 나오는데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밤껍질이 어린나무의 뿌리에 계속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옛 어른들은 밤나무는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는 나무로 여기게 됐고, 조상의 음덕을 기억해야 하는 제상상에 반드시 올리게 됐다고 한다.’(201쪽) ‘제사 때에 향나무로 만든 향을 피우는 것 역시 하늘에 계신 조상들께 우리의 정성이 잘 이르기를 기원하는 뜻’(269쪽)이었다. 설날·추석이 돌아오면 나는 붓펜으로 지방을 썼고, 아버지는 다락방에 보관한 향나무 토막을 꺼내 잘 드는 칼로 얇게 저몄다. 향로에서 향나무 조각이 타들어가자 제사 올리는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5월 들어서며 피어나는 옥매의 꽃은 무척 화려했다. 뿌리에서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모여서 돋아나는 떨기나무였다. 한꺼번에 가느다란 줄기를 감싸듯 온통 흰송이가 한가득 달렸다. 사무실을 오가는 오솔길의 오래된 폐가 마당 한귀퉁이의 나무가 옥매였다. 나는 봄철 피어나는 꽃무더기가 너무 탐스러워 한때 우리집 화계로 옮겨심을 욕심을 가졌었다. 책을 잡고서 나무의 이름을 알았다. 이제 아름다운 꽃을 무더기로 피워올리는 작은 나무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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