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방부제가 썩는 나라
지은이 : 최승호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누군가의 시 한 편』(달아실, 2018) /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문학과지성사, 2018) / 『방부제가 썩는 나라』(문학과지성사, 2018)
삼년 전 초겨울 나는 시인의 시집 세 권을 손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잡은 시집은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난다, 2013) 이후 5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이었다. 3부에 나뉘어 실린 105편의 시들은 대체로 짧았다. 발문·해설이 보이지 않았다. 뒤표지의 표사도 「시작노트」가 대신했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의 트레이드마크 앞표지의 컷이 낯설었다. 그동안 눈에 익었던 소설가·화가 이제하의 그림이 아닌 화가·시인 박상순의 컷이었다.
모든 게 다 썩어도 / 뻔뻔한 그 얼굴은 썩지 않는다
표제시 「방부제가 썩는 나라」(16쪽)의 전문이다. 단 두 행짜리 시에서 시인은 방부제마저 썩게 만든 이 땅의 뻔뻔한 자들에게 극도의 반감을 드러냈다. 방부제마저 썩을 정도로 부패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통렬한 사회 인식이 시편마다 담겼다. 정작 부패한 사람들은 자신이 썩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뻔뻔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집 첫 머리의 「시인의 말」은 “시가 시시한 시대일수록 /시시하지 않는 시를 써야 한다.”였다. 갯지렁이, 아무르불가사리, 갯가재, 가시닻해삼, 달랑게, 범게, 밤게, 서해비단고둥, 동죽, 큰구슬우렁이, 쏙붙이, 흰조개, 민챙이, 왕눈물떼새, 흑꼬리도요, 노랑부리저어새. 「말 못하는 것들의 이름으로」(60 - 62쪽)에서 새만금 사업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거나, 삶터를 잃고 쫓겨난 생물들은 말했다. ‘지금 서해안에서는 새만금이라는 세계 최대의 관을 짜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깃든 이 땅의 아름다운 산하를 한갓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 뻔뻔한 이들을 보는 시인은 참담했다. “비평가 김우창 선생이 시는 ‘일상을 꿰뚫는 섬광 같은 깨달음’이라고 했다. 내 시들이 누군가의 일상을 꿰뚫고 번쩍하고 빛나기를, 그리고 독자들에게 쿵 하고 다가가기를 바란다.”라고 시인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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