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지은이 : 윤희상
펴낸곳 : 문학동네
시인 윤희상(1961 - )은 나주 영산포에서 태어났다. 1989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소를 웃긴 꽃』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었다. ‘1980년 광주에서 내가 고등학생일 때 계엄군이 나의 시를 검열했다.’ 「시인의 말」의 첫 구절이었다. 「연학이 형 생각」(66 - 67쪽)은 80년 5월 광주를 그렸다. 3부에 나뉘어 66 시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흐르는 역사의 어둠의 기술」이었다.
문학평론가는 “소박한 외양을 지닌 그의 시는 고심참담해서 쓴 복잡한 시들이 미처 다하지 못한 말을 그 뿌리에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 그 점에서 그의 소박한 언어는 모험의 언어이며, 율조가 잔잔한 그의 시는 실험시의 가치를 지닌다.”(103 - 104쪽) 라고 평했다. 시인은 세계의 이면裏面에서 벌어지는 풍경과 일상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의 시세계는 소박한 언어로 펼쳐졌다. 무슨 소리인지 시인 자신도 모르는 난해함으로 범벅된 시단에서 일상의 언어로 펼쳐지는 그의 시들은 따뜻하고 순박했다. 나는 시인의 소박한 시편들에 매료되었다. 품절되어 구할 수 없는 시인의 첫 시집이 재출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표제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은 「도너츠」(61 - 62쪽)의 마지막 行이었다. 또한 「비밀」의 마지막 3행은 이랬다.‘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 이것은 비밀입니다’ 시인은 「일본 여자가 사는 집」에서 어머니가 일본 여자로 혼혈아임을 고백했다. 시인은 먼 조상에서 친구까지 많은 이들을 불러내어 여백 속에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직 서점주인 돈가스집 주인, 물리선생 사촌형, 일본 여자 엄마, 친구 김승대, 조각가 최종대, 소설가 강경애, 소 팔고 술에 취한 광식이 아버지, 하숙집 아들 연학이 형, 영산포역 앞 약장사, 보타사 주지 초우스님, 중국음식점 안암장 배달원 김동식, 오규원 시인, 이혼한 다문화가정 초등생3년 준호, 김근태, 12대조 의병장 윤의 할아버지, 한미연합사 근무하는 중령 친구 등.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어떤 물음」(12쪽)의 전문이다.
가끔 찾아가는 돈가스집 주인은 / 지난해까지 서점 주인이었다 / 그래서 책표지를 잘 싼다 // 내가 가방에서 두 권의 책을 꺼내 / 돈가스집 주인에게 / 책표지를 싸달라고 했다 // 한 권은 불교 법요집이고 / 한 권은 기독교 성경 해설집이다 // 돈가스집 주인은 / 책표지를 싸다가 /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죽어서 어디로 갈라고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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