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지은이 : 피에로 말비치·조반니 피렐리
옮긴이 : 임희연
펴낸곳 : (주)혜다
1920년대 초반, 이탈리아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국가파시스트당이 권력을 장악했다. 파시즘 정권은 2차 세계대전 독일, 일본과 손잡고 추축국이 되어 연합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1943년 독일은 스탈린그라드 침공에서 소련에 패했다. 그해 7월 연합국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상륙했다. 무솔리니는 실각하고, 이탈리아는 연합국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 이때 나치 독일이 북부 이탈리아를 침공해 괴뢰정부를 세우고 무솔리니를 수반으로 다시 앉혔다.
이탈리아는 연합국에 의해 해방된 남부와 파시스트가 장악한 북부로 갈라져 내전에 돌입했다. 북부의 파시스트 정권과 독일 나치에 대항하기 위해 이탈리아 각지에서 레지스탕스(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유럽 국가들에서 점령군에 맞서 저항한 운동)가 펼쳐졌다. 이탈리아어로 레시스텐차(Resistenza)는 저항운동 단체를 총칭하여 부르는 이름이었다. 이탈리아 파르티잔 또는 이탈리아 독립군으로 알려진 이들은 스스로의 투쟁을 이탈리아 해방전쟁이라 불렀다.
주조공, 가구공, 막노동자, 농민, 수습기계공, 식자공, 주부, 보일러 석공, 벽돌공, 전기공, 선반공, 목각공, 양철공 등 이들은 말그대로 민중이었다. 36시간 지속적인 고문 끝에 총살형으로 생을 마친 17세 배선공 도메니코 카포로시에서, 사단장의 지위에 있었던 육군 소장으로 수차례 고문을 당한 끝에 334명의 정치범들과 함께 총살된 63세의 시모네 시모니까지, 201명의 레지스탕스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쓴 편지이자 유언이었다. 죽음을 앞둔 극한 상황에서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힘겹게 한자한자 적어 내려갔다. 모든 이들의 편지에 어머니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글들은 짧고 소박했다.
이들이 군사법정에 선 것은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는 죄명이었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파시즘을 몰아내기 위해 총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그들은 체포되어 끔찍한 고문에 시달렸고,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총살과 교수형으로 하나뿐인 생을 마쳤다. 그들은 역 앞 광장에서, 공동묘지의 벽 뒤에서, 부대 안 사격장에서, 마을의 학교나 다리 근처에서 죽어갔다.
36세 대학강사 파올로 브라치니는 어린 딸에게 이렇게 썼다. “내 딸아, 언젠가 이 아빠를 온전히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절대 울지 않았듯, 너도 이 아빠의 부재로 인해 울지 않았으면 한다. 아빠는 절대 죽지 않을거야. 아빠는 언제나 너를 지켜 볼 것이고, 보호해 줄 거야.”(130쪽)
28세 양모나 솜 등을 빗는 사람 파올라 가렐리는 어린 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엄마 때문에 울어서는 안 돼. 그리고 이 엄마를 부끄러워해서도 안 돼. 네가 어른이 되면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거야. 딱 한 가지만 부탁할게. 공부 열심히 하렴. 하늘나라에서 너를 위해 기도할게.”(245쪽)
27세 교사였던 이냐치오 비안은 파시스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일군에게 교수형을 당했다. 지금도 가족이 보관하고 있는 감옥에서 발견된 빵덩어리에 그는 - 용기, 어머니 - 라고 적었다. 그리고 감방 벽에 피로 글씨를 썼다. - 배신을 하느니 죽는 편이 낫다 - (537쪽)
재일조선인 서경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 실린) 한 편 한 편의 ‘편지’는 개개인들 영혼의 고통스런 기록이다. 이탈리아 민중이 희생을 치르고 해방을 이룩했다는 ‘자신감’이다. 정의의 실천에 게을렀다는 반성은 지금의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 책은 역사적 반동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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