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사라져 가는 풍경들
지은이 : 이용한
펴내곳 : 상상출판
시인은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어언 25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펴낸 시집은 고작 세 권이었다. 시인은 말했다. 10년은 정처 없는 시간의 유목민으로, 또 14년은 고양이 작가로 살았다. 나는 시인을 『사라져 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물고기 여인숙』, 『은밀한 여행』등 문화기행서로 만났다. 고양이에세이 10여권을 펴낸 15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그가 사라져 가는 풍경들에 관한 에세이로 돌아왔다. 시골마을 이곳저곳에서 만난 옛 풍광들과 그 속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었다. 책은 15년 동안 발로 찾아 낸 옛 풍경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었다.
1장 '옛집 풍경'은 초가에서 장독대까지 19꼭지는 이제 보기 힘든 옛집의 다양한 모습과 살림살이 풍경을 이야기했다. 2장 '그 밖의 풍경들'은 뒷간에서 호리까지 15꼭지는 옛사람들의 생활과 놀이를 보여주었다. 두 세대 전까지 흔하게 일상에서 보았던 풍경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3장 '명맥을 잇는 사람들'은 초막에서 여자만 꼬막 뻘배잡이까지 18꼭지는 전통을 만들어 온 사람들을 다루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통을 보존해 온 이들의 사연을 풀어냈다. 4장 '마을문화'는 오지마을에서 '앉은 초분'까지 21꼭지는 오랜 시간 지켜 온 풍습과 의식을 이야기했다.
‘장독대는 단지 장류를 담은 항아리를 보관하는 장소로만 여기지 않았다. 어머니가 정화수를 떠 놓고 자식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장소 또한 장독대였다.’(79쪽) 15여년을 훌쩍 넘긴 저쪽의 세월. 우리 모자는 김포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들고개 언덕 집에서 서해의 작은 섬 주문도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장독대의 큰 간장독 서너 개를 이삿짐에 꾸리고 싶으셨다. 차 두 대에 꽉 찬 이삿짐으로, 부피 큰 장독은 번거로웠다. 장독은 옛집에 그냥 버려두었다. 섬에 들어와 이삿짐을 다 풀고 나자 어머니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둔한 나는 그때서 아차했다. 며칠 지나 옛집을 둘러보니 장독은 그새 누군가의 손을 탔다. 반세기 세월, 어머니의 손길이 머물렀던 장독에 대한 애정은 철부지 아들에게 귀찮은 이삿짐일 뿐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그 옛날 아이들은 정월 대보름이 되면 못 쓰게 된 깡통(망우리)을 주워 양쪽 귀 끝에 철사를 꿰어 손잡이를 만들고, 깡통에 숭숭 불구멍을 내어 쥐불놀이 준비를 했다.'(263쪽) 나의 어린 시절, 쥐불놀이 준비는 설날연휴가 끝나며 시작되었다. 가장 구하기 힘든 것이 빈 깡통이었다. 우리는 읍내까지 진출해 분유 깡통을 구했다. 다른 동네 아이들은 불쏘시개로 마른 소똥을 주워 모았다. 가난한 우리 마을은 소가 한 마리도 없어, 불쏘시개용으로 뒷산의 솔방울이 고작이었다.
‘달집을 태울 때는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소원을 적은 쪽지를 매달아 함께 태웠으며 소원 대신 이름을 써넣기도 하였다.’(266쪽) 내가 태어나고 자란 옛집은 언덕 꼭대기 집이었다. 서울로 향하는 48번 신작로가 김포평야 건너 사자산 기슭으로 꼬리를 사렸다. 함지박만한 보름달이 떠오르면 어머니는 나를 앞세우고, 불붙인 짚단을 두 손으로 쥔 채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우리 막내 올해에도 병치레 없게 하시고···.” 달님에게 소원을 빌고, 불기가 남아있는 짚단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세 번을 이리저리 건너뛰었다. 어머니는 썬 가래떡을 짚불에 구워 막내의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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